침묵 속에서 무너진 세대
차가운 법정의 공기가 유난히 무겁게 내려앉았다. 늦가을의 회색빛 햇살이 유리창 사이로 스며들 때, 재판장은 천천히 판결문을 읽어나갔다. 그 순간, 한 노인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70대 남성 A씨. 그는 40년 동안 자신의 친딸과 손녀를 성폭행한 혐의로 결국 징역 25년의 중형을 확정받았다.
A씨의 범행은 1985년, 아무도 모르게 시작되었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인 공간에서, 그 침묵은 공포의 다른 이름이었다. 딸 B씨는 어릴 적 기억을 이렇게 말했다.
“그건 가족이 아니었어요. 그 집은 감옥이었어요.”
그녀의 눈빛은 오래된 상처처럼 흐릿했다. 기억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듯했다.
밤마다 방문이 닫히는 소리, 무겁게 울리는 발걸음. 그 소리 하나하나가 어린 B씨의 삶을 짓눌렀다. 이웃들은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조용한 집’이라 불렀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조용함 속엔 절규가 숨어 있었다.
그날 법정에서 판결이 내려지던 순간, 방청석은 숨을 죽였다. “징역 25년.” 짧은 문장이지만 그 안엔 세월과 죄가 겹겹이 쌓여 있었다. 그 수많은 시간 동안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침묵했다. 사람들은 고개를 떨군 채, 그날의 무게를 느꼈다.

끝나지 않았던 공포의 시간
A씨의 범행은 세대를 넘어 이어졌다. 딸에서 손녀로, 그리고 또 다른 어린 생명으로. 경찰 조사에 따르면 그는 1985년부터 2022년까지 무려 277회에 걸쳐 친딸 B씨를 성폭행했고, 그 자녀들 역시 범행의 대상이 되었다.
“그가 돌아오는 소리만 들어도 몸이 굳었어요.”
B씨의 증언은 짧았지만, 방 안의 모든 공기를 멈추게 했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도망칠 수 없었어요. 가족이니까.” 그 말엔 오랜 죄책감과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A씨는 가족을 철저히 통제했다. 외출을 제한하고, 말 한마디에도 폭력을 휘둘렀다. 아이들은 늘 두려움 속에서 자랐다. ‘아빠가 화나면 안 된다’, ‘비밀을 말하면 더 아프다’는 규칙이 그들의 일상이었다. 그 비밀은 40년 동안 누구도 깨지 못했다.
사건이 세상에 드러난 것은 손녀의 용기 덕분이었다. 어느 날 학교 상담 시간, 손녀가 조심스럽게 “할아버지가 이상한 짓을 해요”라고 말했다. 교사는 즉시 신고했고, 그제서야 긴 어둠이 걷히기 시작했다.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진술과 증거는 모두를 충격에 빠뜨렸다. 범행 횟수와 기간, 피해자의 나이, 그리고 침묵의 길이. 모든 것이 믿기 어려웠다. 경찰은 “이 사건은 단순한 가정 폭력을 넘어, 인간의 기본적인 존엄을 파괴한 범죄”라 밝혔다.
하지만 피해자에게 진짜 고통은 법정이 끝난 뒤 시작되었다. “그는 감옥에 갔지만, 내 안의 감옥은 아직 열리지 않았어요.” B씨는 눈을 감고 말했다. 긴 세월 동안 반복된 공포는 마음의 구조를 바꿔버렸다.
그녀는 자신을 탓했다. 왜 일찍 말하지 못했을까, 왜 더 빨리 벗어나지 못했을까. 하지만 그런 질문은 피해자에게 향할 게 아니었다. 우리는 왜 그들의 신호를 보지 못했을까. 사회는 왜, 그 집의 문을 두드리지 않았을까.
판결 뒤에 남은 상처와 질문
대법원은 결국 A씨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의 징역 25년을 확정했다. “피해자의 고통은 회복될 수 없으며, 범행 기간과 횟수, 피해의 중대성을 고려할 때 중형이 불가피하다.” 법원은 그렇게 말했다.
이번 판결은 단지 한 사람의 처벌이 아니다. 오랜 세월, 가정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졌던 폭력의 실체를 드러낸 사건이다. 사회는 이제 더 이상 ‘가족 문제’라는 말로 이런 범죄를 덮을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판결문이 내려진 지금도, 피해자들의 상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들은 사회의 눈을 피해 살아가며, 가족이라는 단어를 듣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힌다고 했다.
“법은 끝났지만, 내 인생은 아직 그날에 머물러 있어요.”
B씨의 말은 법정의 끝자락에서 울렸다. 그 목소리엔 분노보다 슬픔이 많았다.
결국 이 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폭력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그리고 우리는 얼마나 쉽게 침묵을 선택하는가.
나는 그날 법정의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진실은 항상 늦게 오지만, 멈추지 않고 온다는 걸.
그날의 침묵은, 오히려 더 큰 울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