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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포기 소송 기각, 법은 현실을 택했다 — 미국 공무원 취업을 이유로 국적을 버리려 한 남성의 선택, 그가 맞닥뜨린 냉정한 진실

by jeongwonn1 2025. 10. 13.

① 두 나라의 경계에 선 남자, 결심은 차가운 서류 앞에서 시작됐다

새벽의 공기가 유난히 서늘했다. 불빛이 희미하게 번지는 서울의 한 아파트 창가, A씨는 커피잔을 비워내며 문서를 들여다봤다. 그 문서 위에는 단 네 글자, “국적 이탈 신고”. 펜 끝이 떨렸다. 한국과 미국, 두 나라의 이름이 그를 동시에 붙잡고 있었다. “미국 공무원으로 일하려면 한국 국적을 포기해야 합니다.” 변호사의 말이 차갑게 메아리쳤다. 그 순간, 그의 마음은 흔들렸다.

그는 단순히 행정 절차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졌다. 법무부의 답변은 단호했다. ‘국적 포기 불허’. 그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왜 안 되는 걸까. 나는 미국 시민인데.”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 방 안을 맴돌았다.

A씨는 결국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자신이 미국 국적자임을 인정하고, 한국 국적을 포기할 수 있도록 허가해 달라는 요구였다. 그에겐 미래가 걸린 일이었다. 미국 정부 기관에서 일할 기회를 잡기 위해서라도 한국 국적을 내려놓아야 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에게 그렇게 관대하지 않았다.

“이건 단순한 행정이 아닙니다. 한 인간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죠.” A씨 측 관계자의 말이었다. 그러나 감정은 법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법정의 공기는 언제나 현실적이었다.


② 법정의 공기, 기록이 말한 것은 ‘19일’이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의 재판정은 묘하게 조용했다. 나무 벽면을 따라 퍼지는 낮은 목소리와 종이 넘기는 소리만 들렸다. 방청석 한쪽에서 기자들이 조심스럽게 펜을 움직였다. 판사는 서류를 한 장씩 넘기며 말했다. “원고는 최근 7년간 미국에 머문 기간이 며칠입니까?”

잠시의 침묵. 변호인이 답했다. “19일입니다.”
순간 법정 안의 공기가 멈춘 듯했다. 재판부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A씨는 미국에 주소를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법적으로 저는 미국에 거주 중입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냉정했다. “법은 실제 생활 근거지를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판사의 말은 담담했지만, 그 울림은 컸다.

A씨는 7년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한국에서 보냈고, 미국에 머문 건 단 19일뿐이었다. 법원은 그 사실을 근거로 ‘외국 주소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결론 내렸다. “결국 그는 서류상의 미국인이었을 뿐, 실제로는 한국에서 살아온 사람입니다.” 재판 관계자의 말이었다.

그는 반문했다. “그럼 법적으로 주소를 옮겨도 의미가 없다는 건가요?” 그러나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③ ‘실질’의 벽, 그리고 국적이라는 이름의 무게

법정에서의 싸움은 짧지 않았다. A씨는 끊임없이 자신이 미국과의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주장했다. 세금, 우편물, 주소지, 심지어 전화번호까지 모두 미국 기준으로 등록돼 있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형식보다 실질입니다.” 판결문에 적힌 문장은 단호했다.

그는 항의했다. “저는 미국에서 일할 자격이 있습니다. 단지 기회가 없었을 뿐이에요.” 하지만 법은 그 사정을 헤아리지 않았다. 국적 포기는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닌, 생활의 중심이 어디에 있느냐로 결정된다. 실제 거주, 직업, 사회적 관계 모두 한국에 있었다.

결국 법원은 법무부의 판단이 정당하다고 봤다. A씨의 국적이탈신고 반려 처분은 유지되었다.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판사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 한 문장이 모든 것을 끝냈다.

재판이 끝난 뒤, 법정 안의 공기가 서서히 풀렸다. 기자들이 노트를 덮었고, 방청객들은 조용히 자리를 떴다. 그때, 한 관계자가 조용히 말했다. “법은 냉정하지만, 동시에 현실적입니다. 누구도 그걸 피할 수는 없죠.”

그는 왜 이토록 간절했을까? 어쩌면 그에게 ‘미국’은 단순한 국가가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그 가능성을 문턱에서 멈춰 세웠다.


④ 판결 이후의 시간, 그가 마주한 건 ‘책임’이었다

법정 문이 닫히자, A씨는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판결문을 손에 쥔 채 복도를 걸었다. 차가운 공기가 폐를 스쳤고, 그 소리가 귀에 남았다. “이게 끝인가.” 그는 중얼거렸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여전히 미국을 향한 꿈이 꺼지지 않았다.

이번 판결은 복수국적자들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던졌다. 국적 포기를 원한다면, 서류상의 주소나 명목상 체류가 아닌, 실제 생활 근거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단 며칠의 방문으로는 그 조건을 충족할 수 없다.

한 법조계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국적은 단순한 신분이 아니라 정체성입니다. 그것은 책임의 문제이기도 하죠.” 그 말은 무겁게 들렸다.

A씨의 패소는 한 개인의 사연으로 끝나지 않는다. 국적이라는 제도적 장치가 얼마나 냉정하고 동시에 현실적인지를 보여준 사례다. 한국은 여전히 국적이탈 요건을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해외 체류와 생활의 중심을 입증하지 못하면, 국적 포기는 쉽지 않다.

그는 다시 한 번 하늘을 올려다봤다. 푸른 빛이 번지는 창밖에는 서울의 빌딩들이 서 있었다. 그곳이, 그가 떠나고자 했던 바로 그 땅이었다. 미국의 문은 열리지 않았지만, 그에겐 여전히 한 나라의 이름이 남아 있었다.

결국, 선택하지 못한 선택이 그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