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어붙은 진실, 2년의 침묵
경기도 외곽의 낡은 단독주택. 유리창엔 먼지가 쌓였고, 시계는 멈춘 지 오래였다. 그 집 안에는 작은 냉동고 하나가 있었다. 얼음이 맺힌 그 문 안에는, 살아 있는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시간이 숨어 있었다.
40대 남성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날, 신고 대신 냉동고를 열었다. 그리고 조용히 그 안에 아버지를 눕혔다. “그냥… 보내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재판정에서 고개를 숙이며 그렇게 말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한마디는 법정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의 집 안엔 여전히 아버지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식탁 위엔 찻잔이, 방 한쪽에는 낡은 구두 한 켤레가 그대로였다. 이웃들은 말했다. “가끔 새벽마다 혼잣말이 들렸어요. ‘아버지, 오늘은 추워요’ 같은 소리요.”
그에게 냉동고는 시신의 보관소가 아니라, 세상과의 마지막 연결이었다. 아버지를 잃은 순간, 그는 현실까지 함께 잃었다.
판사는 판결문을 읽으며 잠시 말을 멈췄다. “사랑은 이해하지만, 그것이 죄를 덮을 수는 없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을 유지했다. 징역 3년.
그는 그 말을 들으며 눈을 감았다. 눈물이 떨어졌지만, 울음은 없었다. 그가 잃은 건 한 사람의 생명이 아니라, 세상의 온기였다.
냉동고 속에는 죽은 아버지가 있었지만, 어쩌면 더 깊이 얼어붙은 건 아들이었다. 그를 감싼 건 한겨울의 공기보다 더 싸늘한 외로움이었다.
도심의 밤, 술에 젖은 핸들
서울의 밤은 늘처럼 반짝였다. 퇴근길의 차들, 골목의 웃음소리, 그리고 술집 문이 열릴 때마다 퍼지는 취기. 그 평범한 밤, 20대 남성은 친구와 술잔을 부딪혔다. “야, 괜찮아. 금방이야.” “대리 불러.” “야, 나 멀쩡해.”
그 짧은 대화가, 두 사람의 인생을 갈랐다.
그는 웃으며 시동을 걸었다. 창밖의 불빛은 번졌고, 도로는 젖은 듯 반짝였다. 음악 소리가 들렸고, 잠깐의 웃음. 하지만 다음 순간, 세상이 멈췄다.
쾅—.
짧은 비명, 깨지는 유리, 그리고 정적.
군 복무 중인 아들을 만나러 가던 60대 어머니와, 야근을 마치고 귀가하던 30대 직장인이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다. 핸들은 비틀렸고, 차 안에는 맥주 냄새가 퍼졌다.
법정에서 그는 울었다. “죽고 싶습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그 말을 들은 피해자의 아들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엄마는 약속을 지키려던 거예요. 아들을 만나러 간다고…”
판사는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의 한순간이 두 가정을 없앴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평생입니다.”
징역 8년, 벌금 30만원. 그리고 옆자리에서 말리지 못했던 친구에게도 징역 8개월. “당신은 그를 멈출 수 있었습니다.” 그 말에 법정은 잠시 침묵했다.
그날 이후, 사고 현장에는 국화 두 송이가 놓였다. 지나가던 시민들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비가 오면 꽃잎은 흙탕물에 젖었고, 햇살이 비치면 하얗게 말랐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사람들은 묻는다. “괜찮겠지, 그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아세요?”
결국 남은 건, 사회의 무거운 질문
결국 이 두 남자의 이야기는 달랐지만, 뿌리는 같았다. 한 남자는 사랑을 이유로 진실을 숨겼고, 또 다른 남자는 방심으로 생명을 앗아갔다. 하지만 둘 다, ‘멈추지 않았다’는 점에서 닮아 있었다.
하나는 슬픔을 붙잡았고, 하나는 현실을 가볍게 여겼다. 그리고 그 끝엔, 되돌릴 수 없는 상실이 있었다.
심리상담가는 말했다. “한 사람은 상실을 견디지 못했고, 다른 한 사람은 책임을 피하려 했죠. 하지만 둘 다 외로움 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냉동고 속의 정적과 도심의 충돌음. 서로 다른 사건이지만, 우리 사회에 같은 물음을 던진다.
“우리는 왜,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가?”
법은 처벌을 내렸고,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안다. 이런 사건은 내일 또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냉동고 속의 아들은 여전히 아버지를 잊지 못하고, 도로 위에서 누군가는 또 술에 취해 시동을 건다.
그 모두가 “이번만은 괜찮을 거야”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말이, 언제나 비극의 시작이 된다.
결국 진실은 느리게 온다. 하지만 느리게 오는 만큼 더 무겁다.
냉동고 속의 침묵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도심의 타이어 자국은 아직 지워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 앞에서 잠시 멈춰 선다. 그리고 속삭인다.
“그때, 내가 멈췄다면 달라졌을까?”
그날의 침묵은, 여전히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
그리고 그 침묵은 오늘도 말없이 우리에게 가르친다.
진실은 차갑지만, 사람의 마음은 더 차가워질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