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① 여의도의 긴 밤, 시작은 한 통의 계약서였다
초겨울의 바람이 매섭게 불던 여의도의 밤, IFC 빌딩 유리벽에 불빛이 길게 비쳤다. 그 안에서는 몇 달째 지속된 회의가 계속되고 있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법무팀은 피곤에 찌든 얼굴로 서류를 다시 넘겼다. 그들이 마주한 상대는 세계적인 투자회사, 캐나다 브룩필드자산운용이었다.
모든 것은 한 통의 계약서에서 시작됐다. 2021년, 브룩필드는 서울 여의도 IFC(International Finance Center) 매각 계약을 추진했다. 당시 미래에셋은 국내 대표 금융그룹으로서 글로벌 부동산 시장 진출을 확대하던 시기였다. 계약금만 2,000억 원. 그러나 협상이 끝나기도 전에 균열이 생겼다. 브룩필드 측이 약속된 조건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우리는 신뢰로 계약했다. 하지만 그 신뢰가 깨졌을 때, 선택은 명확했다.”
한 관계자의 말처럼, 그들의 싸움은 단순한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 자본이 글로벌 무대에서 정당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가의 문제였다. 여의도의 공기는 묘하게 무거웠고, 회의실을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엔 다짐이 어려 있었다.
그날 이후, 미래에셋은 세계 3대 중재기관 중 하나인 **싱가포르국제중재센터(SIAC)**에 정식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사람들은 조용히 숨을 고르며, 그 결과를 기다렸다.
② 세계의 법정에서 벌어진 싸움, 그리고 판정의 순간
“이건 단순한 분쟁이 아닙니다. 글로벌 룰 속에서 한국 기업의 신뢰가 걸린 싸움입니다.”
이 말을 남긴 이는 미래에셋의 국제소송 담당 변호사였다. 싱가포르 현지의 법정 안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영어와 법률용어가 오가는 동안, 중재인들의 시선은 서류와 증언 사이를 오갔다.
사건의 핵심은 명확했다. 브룩필드가 계약 체결 이후 약속된 절차와 정보를 성실히 제공하지 않았다는 점. 미래에셋은 이를 근거로 계약금 2,000억 원 전액 반환을 요구했다. 반면 브룩필드는 ‘정상적인 계약 해지’라며 반박했다. 양측은 2년에 걸쳐 수백 쪽의 자료를 주고받았고, 중재인은 수십 차례 회의를 열었다.
결국 2025년 10월 13일, SIAC는 판정을 내렸다.
“브룩필드는 계약상 의무를 위반했으며, 미래에셋에게 계약금 전액과 지연이자, 중재 비용 일체를 지급하라.”
법정은 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누군가가 말했다.
“드디어 끝났군요.”
이 판결은 단순한 승소가 아니었다. 해외 부동산 거래에서 한국 금융사가 글로벌 규칙 안에서도 공정한 결과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컸다.
그동안 해외 대형 자산운용사들은 계약 분쟁에서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하곤 했다. 정보 비대칭, 법률 구조의 복잡함, 언어 장벽 등 모든 조건이 불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그 질서를 흔들었다.
“이 싸움은 단지 2,000억 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신뢰의 문제였다.”
한 미래에셋 관계자의 말처럼, 이번 판결은 한국 금융산업의 자존심을 지킨 하나의 선언이었다.
그렇다면, 이 승소가 남긴 진짜 질문은 무엇일까?
“돈을 돌려받은 것만으로, 정의가 완성된 걸까?”
③ 정의를 넘어 신뢰로 — 미래에셋이 남긴 메시지
결국, 이번 사건의 본질은 돈보다 신뢰에 있었다.
계약이란 말로 맺어진 약속의 무게. 그 약속이 깨졌을 때, 누가 끝까지 싸우는가의 문제였다. 미래에셋은 그 답을 행동으로 보여줬다.
이 사건을 통해 한국 기업은 글로벌 무대에서 **‘상대적 약자’**가 아니라 **‘당당한 파트너’**로 자리 잡을 수 있음을 증명했다.
하지만 여전히 남는 질문이 있다.
국제 시장에서 한국 자본이 앞으로도 이렇게 싸워야만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가?
브룩필드 같은 세계적 자산운용사조차 계약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사실은, 글로벌 자본의 비대칭 구조를 여전히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승소는 하나의 전환점이다.
미래에셋은 계약 위반으로 인한 재정적 손실을 회수했을 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법적 신뢰의 선례를 남겼다. 이는 단지 한 회사의 승리가 아니라, 한국 금융 생태계 전체가 더 공정한 경쟁 환경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묻는다.
“이제 여의도의 빛은 조금 더 따뜻해졌을까?”
한 금융전문가는 이렇게 답했다.
“그들의 싸움이 남긴 건 돈이 아니라 신뢰입니다. 신뢰는 시장의 가장 단단한 통화니까요.”
결국, 그날의 긴 싸움이 남긴 건 단순한 승소의 환호가 아니었다.
그건 기업이 지켜야 할 약속의 무게, 그리고 신뢰가 만들어내는 조용한 울림이었다.
여의도의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그 안에는 작지만 단단한 온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날의 침묵은, 오히려 더 큰 울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