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흘러가는 공기 속에서 듣는 마음의 소리
오늘은 유난히 공기가 부드럽다.
창문을 살짝 열었더니
바람이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
얼굴에 닿는 느낌이 포근해서
잠깐 그대로 서 있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만 들으면서.
커튼이 살짝 흔들리고,
햇살이 그 위에 얇게 내려앉았다.
공기 속엔 먼지 냄새랑
어딘가 낯익은 향이 섞여 있었다.
그 냄새가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렸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그냥 따뜻했다.
바람은 참 신기하다.
모양도 없고, 잡을 수도 없는데
분명히 ‘있다’는 게 느껴진다.
내 손끝을 스치고,
머리카락을 살짝 흔들고,
그렇게 잠깐 머물다 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짧은 순간이 오래 남는다.
나는 가끔 바람한테 말을 건다.
크게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속으로 흘려보낸다.
‘오늘은 조금 힘들었어.’
‘그래도 괜찮아질 거야.’
그러면 바람이 들은 척이라도 하는 듯
살짝 스쳐 간다.
그 한 번의 스침에 마음이 풀린다.
세상은 늘 복잡하게 움직이지만
바람은 그렇지 않다.
서두르지도, 멈추지도 않는다.
그저 흘러간다.
그걸 보고 있으면
나도 괜히 마음이 느긋해진다.
뭔가를 빨리 해야 할 이유가
조금은 사라지는 것 같다.
이 바람이 어디서 왔을까.
누군가의 하루를 스치고,
어떤 길을 건너왔을까.
그 사람의 웃음이나 한숨이
이 공기 안에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바람이 조금 더 다정하게 느껴진다.
나는 오늘도 창문을 닫지 못한다.
조금 더 이 바람을 느끼고 싶어서.
이 공기가 한 번 더 내 곁을 돌다 가길 바란다.
언젠가 다시 이런 바람이 찾아올 때,
그때의 나는 오늘보다 조금 더 부드러워져 있기를.
스쳐간 바람 속, 남겨진 이야기
바람은 늘 그렇게 지나간다.
붙잡을 수도, 길을 묻을 수도 없다.
그냥 내 옆을 스치고,
조용히 어딘가로 흘러간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바람이 지나간 자리는
한동안 머물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종종 그런 순간들을 떠올린다.
누군가의 웃음소리,
헤어지던 날의 공기,
그때의 바람의 냄새.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그 느낌은 아직 남아 있다.
마치 바람 속 어딘가에
그날의 마음이 아직 섞여 있는 것처럼.
바람은 참 정직하다.
그날의 온도, 그날의 기분을
그대로 품고 지나간다.
행복했던 날엔 향기가 달콤하고,
슬펐던 날엔 냄새가 조금 시리다.
나는 그걸 구분하지 못하면서도
몸은 먼저 기억한다.
같은 바람이 불면,
그때의 감정이 다시 찾아온다.
길을 걷다 보면
갑자기 그런 바람을 만날 때가 있다.
그 순간, 마음이 멈춘다.
누군가의 이름이 떠오르고,
그 사람의 표정이 스친다.
시간은 흘렀지만,
감정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듯하다.
아마 바람은
우리가 놓치고 산 감정들을
잠시 되돌려주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럴 때마다
잠깐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눈을 감는다.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그 안에 섞인 수많은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누군가의 고백,
누군가의 후회,
그리고 나의 조용한 속마음까지.
그 모든 게 공기 속에서 흘러간다.
바람은 결국 떠난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진 않는다.
어딘가에 닿아 다시 돌아오겠지.
그 안엔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이 실려 있을 거고,
그 바람이 언젠가 다시 내게 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괜히 마음이 편해진다.
모든 건 흘러가지만,
그 흐름 속에서 우리는 연결되어 있으니까.
바람이 남긴 온기, 다시 피어나는 하루
새벽 공기가 생각보다 포근했다.
차가울 줄 알았는데,
살짝 따뜻한 기운이 남아 있었다.
아마 낮 동안 머물던 햇살이
조금은 남아 있었던 거겠지.
그 바람을 마주하자
괜히 숨이 천천히 길어졌다.
어쩌면 우리는
늘 바람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삶을 스치고,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흘러가는 사람들.
그렇게 서로의 하루에 닿고,
아무 말 없이 흔적을 남긴다.
그게 관계의 모양이 아닐까 싶다.
바람은 떠나지만,
그 자리에 온도가 남는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온기처럼,
기억 속 어딘가에 고스란히 남는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짧은 눈빛,
그런 작은 순간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
나는 오늘도 그런 순간을 느낀다.
길을 걷다가 스치는 향기,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그리고 그 모든 걸 데리고 오는 바람.
그 속엔 낯설고도 익숙한 감정이 있다.
그게 좋아서,
나는 잠시 걸음을 늦춘다.
가끔은 생각한다.
바람은 떠나는 게 아니라
잠시 다른 길을 도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언젠가 다시 돌아와
내 어깨를 스칠 때,
나는 오늘의 나보다
조금은 부드럽게 웃고 있으면 좋겠다.
하루가 저물어 간다.
커튼이 천천히 흔들리고,
방 안엔 고요한 공기만 남았다.
그 안에 오늘의 모든 온도가 섞여 있다.
사람의 말, 웃음, 한숨, 그리고 바람까지.
그게 다 어딘가에서 만나
조용히 흘러가고 있을 것이다.
나는 창문을 닫지 않는다.
이 온기가 조금만 더 머물렀으면 해서.
바람이 남긴 따뜻한 공기를
가만히 손끝으로 느낀다.
살아 있다는 게,
이토록 조용하고 다정한 일이라는 걸
오늘은 조금 더 또렷이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