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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방화예비 사건, 소음이 만든 분노의 불씨와 법정의 냉정한 판단

by jeongwonn1 2025. 10. 26.

차가운 여름 낮, 두려움이 번지다

7월의 햇살은 유난히 강했다. 부산진구의 한 아파트 복도는 낮 12시 35분, 정오의 열기로 숨이 막힐 만큼 뜨거웠다. 하지만 그날, 공기를 더 짓누른 건 열기가 아니라 긴장감이었다. 30대 남성 A씨가 두 손에 무언가를 들고 복도를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그것은 40ℓ의 휘발유통이었다. 그리고 그의 주머니 속에는 라이터 한 개가 들어 있었다.
그는 한참 동안 문 앞에 서 있었다. 이웃집 문 손잡이를 바라보던 그의 눈빛엔 분노와 피로, 그리고 묘한 체념이 섞여 있었다. 결국 그는 휘발유통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라이터를 그 옆에 두었다. 아무 말도, 아무 불빛도 없었지만, 복도는 이미 불안으로 가득 찼다.
잠시 후, 휘발유 냄새가 벽을 타고 번졌다. 문틈 사이로 새어든 냄새를 맡은 주민이 놀라 신고했고, 경찰이 출동했다. 불은 붙지 않았지만, 모두가 그 장면을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그가 그걸 켰다면요? 우리 모두 끝이었을 거예요.” 한 주민의 목소리는 아직도 공포로 얼어 있었다.
그날 이후, 그 복도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인사도 사라졌다. 사람들은 서로의 집 앞을 지날 때마다 숨을 죽였다. 그리고 속삭였다. “그 일,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웃의 다툼, 법정의 냉정함

부산지방법원 형사17단독 목명균 판사는 A씨에게 현주건조물 방화예비 혐의를 적용해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법정 안은 고요했다. 피고석에 앉은 A씨는 고개를 깊이 숙이고 있었고, 판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 행위는 공공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중대한 범죄입니다.”
그 한마디에 법정의 공기가 싸늘해졌다.
A씨는 재판 내내 감정이 억눌린 표정이었다. 그는 “소음 때문에 너무 힘들었습니다. 밤낮으로 머리가 울릴 정도였어요. 그날은 그냥… 무너졌습니다.”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그 고통을 이해하면서도, 그 선택이 얼마나 위험한 것이었는지를 지적했다.
“피고인의 심정은 이해되나, 사회적 안전을 위협한 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그날 법정에서 판사의 목소리는 차갑지만 분명했다.
재판을 지켜보던 주민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한 여성이 작게 말했다. “그 사람도 피해자일지 몰라요. 하지만 방법이 틀렸죠.” 또 다른 남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결국 다들 외로운 거예요. 소리보다, 그 외로움이 문제였던 거죠.”
이 사건은 단순히 ‘소음 갈등’으로만 설명되지 않았다. 그것은 이해받지 못한 분노의 폭발이었고, 무너진 관계의 단면이었다. 그 이후, 아파트 내에는 ‘소음 분쟁 조정 안내문’이 새로 붙었다. 하지만 종이 한 장으로는 사람의 감정을 막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묻는다. “이웃과 싸우지 않고 사는 방법, 정말 있을까?”

남은 건, 불안과 질문

결국 A씨의 행위는 범죄로 기록되었지만, 그 이면엔 현대 사회의 단절이 놓여 있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이웃, 대화보다 불만이 먼저인 관계. 그리고 무엇보다 ‘소음’이라는 일상의 문제를 감정의 골짜기로 밀어 넣은 도시의 구조였다.
A씨는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상황은 여전히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층간 소음, 반려동물, 생활 패턴의 차이… 아파트라는 공간은 이제 ‘공동체’가 아니라 ‘개인들의 집합소’가 되어버렸다.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소음 갈등은 단순한 소리의 문제가 아니라, 존중의 문제입니다.” 즉, ‘내가 이 공간에서 인정받고 있는가’라는 감정이 무너질 때, 사람들은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닫는다.
그날의 여름 이후, 부산진구 아파트의 주민들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이웃의 얼굴을 알고 있는가?’, ‘내가 듣는 소리는 누군가의 삶이 아닌가?’
결국, 이 사건은 우리 모두의 거울이다. 화를 낸 사람만이 아니라, 그 옆집의 무관심도, 사회의 피로도 함께 비춰진다.
나는 그 복도의 공기를 상상한다. 라이터 대신 붙잡을 수 있었던 말 한마디, 휘발유 대신 내밀 수 있었던 손 하나. 그것이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그러나 이미 사건은 끝났다. 남은 건, 스스로를 되묻는 침묵뿐이다.
그날의 여름은 지나갔지만, 불안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고 우리는 묻는다. “이웃을 이해한다는 건, 어디서부터 시작되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