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의 오해
그날 밤, 서울 은평구의 공기는 유난히 무거웠다.
7월의 열기가 식지도 않은 늦은 밤, 아파트 단지엔 매미 소리만 가득했다.
그러다 갑자기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창문을 열어둔 사람들은 놀라서 커튼을 닫았고, 복도를 지나던 주민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잠시 후, 사람들이 본 건 일본도를 쥔 한 남자였다.
그의 이름은 백모 씨, 서른다섯 살이었다.
그는 눈에 핏발을 세운 채, 같은 아파트 주민을 향해 소리쳤다.
“중국 스파이야! 네가 날 감시했지!”
그의 목소리는 분노와 두려움이 섞인 듯 떨렸다.
그 순간, 공기가 갈라졌다. 칼끝이 번쩍였고, 피해자는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이웃들은 도망쳤고, 누군가는 112에 전화를 걸었다.
“사람이… 칼에 찔렸어요! 아파트 안이에요!”
사이렌 소리가 멀리서 다가왔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그날 밤, 피 냄새와 싸늘한 바람이 복도를 덮었다.
다음 날, 단지는 숨을 죽인 듯 조용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소리도 이상하게 무겁게 들렸다.
“평소엔 인사도 잘했는데… 믿기지가 않아요.”
주민 한 명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날 이후, 그들은 서로의 눈을 피했다.
누군가는 문을 두 번 잠그고, 누군가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칼끝의 공포
백씨와 피해자는 몇 년째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가끔 마주치면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의 사이였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백씨는 피해자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저 사람이 날 감시하고 있어. 내 뒤를 따라다녀.”
그의 가족과 이웃들은 처음엔 그냥 ‘예민한가 보다’ 하고 넘겼다.
그렇게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사이, 그의 망상은 점점 커져갔다.
사건 당일, 그는 집 벽에 걸린 장식용 일본도를 들고 나왔다.
복도는 어둡고 조용했다.
그는 피해자의 발소리를 듣자마자 몸을 돌렸다.
“지금이야.”
그의 눈빛은 이성을 잃은 듯 차가웠다.
칼날이 공기를 가르고, 한순간에 모든 것이 끝났다.
피해자는 쓰러졌고, 백씨는 숨을 몰아쉬며 중얼거렸다.
“이제 됐어. 임무는 끝났어.”
경찰이 도착했을 때, 그는 피투성이 얼굴로 앉아 있었다.
“그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어요. 난 나라를 위해 한 거예요.”
그의 말은 어딘가 먼 세상 이야기처럼 들렸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망상형 정신질환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그날 이후, 주민들은 서로를 더 이상 믿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선 침묵이 흐르고, 밤마다 누군가는 복도 불을 꺼놓지 않았다.
“그 복도를 지나갈 때마다 심장이 뛰어요.”
이웃 한 명이 말했다.
사건은 끝났지만, 두려움은 여전히 그곳을 떠돌았다.
남겨진 침묵
지난달 25일, 대법원은 백씨에게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살인과 모욕, 총포·화약법 위반 혐의가 모두 인정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범행은 잔혹하고 계획적이며, 사회로부터의 격리가 불가피하다.”
그와 함께 2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명령도 내려졌다.
이제 그는 평생 감옥에서 살아야 한다.
하지만 단지의 사람들에게 그 판결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그날의 장면 속에 살고 있다.
누군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누군가는 창문을 닫을 때마다 그날의 비명을 떠올린다.
“그 사람, 치료만 받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한 주민의 말엔 분노보다 안타까움이 묻어 있었다.
백씨는 사건 전부터 이상 행동을 보여왔다.
혼잣말을 하거나, 공터에서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냥 조용한 사람이겠지”라며 무심히 지나쳤다.
그 무심함이, 결국 한 생명을 앗아갔다.
그날 이후,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조금 더 자세히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엔 여전히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나는 그날의 복도를 상상할 때마다 숨이 막힌다.
누군가가 조금만 더 손을 내밀었다면,
그 싸늘한 칼끝은 다른 방향을 향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남은 건 질문 하나뿐이다.
“이웃을 향한 무관심이 또 다른 비극을 낳지 않으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날의 침묵은, 아직도 은평의 밤공기 속을 떠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