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녹색 불빛 아래 멈춘 두 사람의 시간
짙은 밤공기 속, 사거리의 조명은 차갑게 깜박였다.
의정부 신곡동의 거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하루 일을 마친 시민들이 하나둘 귀가하던 시각,
신호등의 초록빛이 켜지자 젊은 부부가 조심스레 발을 내딛었다.
그들은 이제 막 결혼식을 올린 신혼부부였다.
손을 맞잡은 채,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임신 17주 차였던 아내는 배를 가볍게 감싸며 말했다.
“조심히 걸어요. 아가도 듣고 있을 테니까.”
그 말에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짧은 대화가, 마지막이었다.
10시 3분.
도로 위를 달리던 7.5톤 트럭이 붉은 신호 앞을 스쳐갔다.
운전자는 순간 고개를 돌렸다.
“옆 차를 보느라 백미러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의 진술처럼, 시선은 단 몇 초 다른 곳에 머물렀다.
그러나 그 몇 초가 모든 것을 바꾸었다.
거대한 바퀴는 그들의 시간을 짓눌렀고,
횡단보도 위의 초록빛은 더 이상 희망이 아니었다.
사고 직후, 거리는 얼어붙은 듯했다.
“사람이 치였어요!”
누군가의 절규가 어둠을 찢었지만, 시간은 이미 멈춰 있었다.
남편은 피투성이가 된 채 손을 뻗었다.
그의 시선 끝엔 아내가 있었다.
차가운 노면 위,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달려왔지만, 그 따뜻함은 너무 빠르게 사라져갔다.
그날의 공기는 무겁고, 슬픔은 바람처럼 번졌다.
누군가는 기도했고, 누군가는 울음을 삼켰다.
그리고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다.
“이건, 단순한 사고가 아니야.”

뒤늦은 시선, 그리고 한 남자의 변명
며칠 뒤, 의정부경찰서 회색 건물 안.
50대 운전사 A씨는 담담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사·치상’ 혐의로 구속 송치됐다.
“옆 차를 보느라 앞을 미처 못 봤습니다.”
그의 말은 짧았고, 담담했다.
그러나 그 담담함이 누군가에겐 잔인했다.
사건이 있던 9월 10일 밤, 보행 신호는 분명 녹색이었다.
그는 제동 없이 횡단보도에 진입했다.
경찰 관계자는 “전방 주시 태만이 주요 원인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의정부경찰서는 25일, A씨의 구속 송치를 공식 발표했다.
현장 인근 상점 주인은 사고 직전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소리가 났어요. 그게 사람인지 몰랐어요. 그냥 둔탁하게….”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트럭이 멈춘 자리에 남은 건 타이어 자국과 피 묻은 구두 한 짝뿐이었다.
언론이 현장을 찾자, 시민들의 표정은 무거웠다.
“이 사거리, 늘 위험했어요.”
“밤이면 트럭들이 신호 무시하고 달려요.”
목격자들의 증언은 반복됐다.
하지만 그날만큼의 비극은 없었다.
남편은 여전히 병상에 누워 있다.
의료진에 따르면 중상이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그가 깨어났을 때, 의료진은 조심스레 상황을 전했다.
그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그리고 겨우 입을 열었다.
“아이 이름은 이미 지었는데요…”
그 말은 의사의 기록지 위에, 눈물처럼 번져갔다.
정말 단 한순간의 부주의로, 한 가족의 삶이 사라져야 했을까?
사람들은 묻는다.
“사람보다 먼저 본 건 무엇이었을까?”
트럭의 거대한 철판 뒤, 운전자의 무심한 시선이 남았다.
그 시선은 결국, 두 사람의 인생을 앗아갔다.

남겨진 거리와 지워지지 않는 공기
사고가 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신곡동 사거리는 여전히 조용하다.
횡단보도 한켠엔 누군가 놓고 간 흰 국화가 바람에 흔들린다.
그 옆엔 짧은 메모가 붙어 있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당신들을 기억합니다.”
시민 박정희(가명) 씨는 매일 퇴근길에 그곳을 지난다.
“신호가 바뀌면 잠깐 멈춰요. 그냥… 미안해서요.”
그녀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트럭 사고 이후, 그 사거리의 공기는 달라졌다.
차들이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속도를 줄인다.
신호가 녹색으로 바뀌어도, 누구도 바로 걷지 않는다.
SNS에는 여전히 ‘#신혼부부참변’이라는 태그가 남아 있다.
“이건 제2의 음주운전이에요.”
“사람이 보고도 안 멈추면, 그건 살인이나 다름없죠.”
댓글마다 분노와 슬픔이 뒤섞였다.
사람들은 이제 ‘주의’가 아니라 ‘기억’을 말한다.
누군가는 사고 현장을 지나며 눈을 감고 기도한다.
누군가는 아이의 손을 더 꽉 잡는다.
그리고 누군가는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얼마나 앞을 보고 있었을까.”
이 사고는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다.
한순간의 시선이 빼앗은 것은 ‘생명’이라는 가장 단단한 가치였다.
신호는 약속이다.
그 약속이 무너졌을 때, 도시는 울음을 삼킨다.
결국 남은 건 차가운 기록이다.
사건 일시, 장소, 사망자 수, 혐의.
그러나 기록은 고통을 다 담지 못한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날의 공기는 아직 흐르고 있다.
비 오는 날이면 도로 위의 물자국이 타이어 자국처럼 번진다.
그리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날의 침묵은, 얼마나 큰 울림이었을까.”
나는 그 장면을 잊을 수 없다.
멀리서 들려오던 사이렌, 바람에 흩날리던 경찰선,
그리고 한 남자가 부서진 신호등 앞에서 꺼내던 절규.
“그냥, 잠깐이었어요…”
그 말은 변명이 아니라, 후회였다.
그러나 그 후회는 너무 늦게 도착했다.
의정부의 밤하늘 아래, 여전히 그날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바람은 차갑고, 조명은 여전히 반짝인다.
하지만 그 불빛 아래의 시간은 멈춰 있다.
그날의 침묵은, 오늘도 그 거리 위를 걷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