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이름들 앞에서 멈춘 숨결
가을비가 살짝 스쳐간 뒤, 지리산 자락엔 묘한 냄새가 감돌았다. 젖은 흙냄새와 국화 향이 뒤섞인 공기 속에서 사람들은 말없이 걸었다. 전남 구례군 지리산 역사문화관 앞, 하얀 국화를 든 손이 수없이 모였다. 여순10·19사건 77주기 추념식. 그 긴 세월 동안 잊히지 못한 이름들이 오늘도 조용히 불렸다.
한 노인은 오래된 사진 한 장을 품에 안고 있었다. 빛이 바랜 흑백 속엔 젊은 남자의 미소가 있었다.
“그게 내 아버지요. 그냥 지나가다가 끌려갔어요. 죄도 없었는데.”
그 말에 주변의 숨결이 잠시 멎었다. 노인의 목소리는 떨렸고, 그 떨림이 잔잔히 행사장 전체로 퍼졌다.
그날, 이재명 대통령은 SNS를 통해 글을 올렸다. “다시는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조치를 다하겠습니다.” 단 한 줄이었지만, 사람들은 그 문장에 오래 시선을 두었다.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약속했다는 사실. 그 한마디가 77년의 기다림 속에서 잠시 희망처럼 피어올랐다.
지리산 아래 울린 약속의 목소리
추모식은 고요하게 진행됐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국화꽃 향이 바람에 실려 흘러갔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단상 위에 섰다. 마이크를 두 손으로 잡은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진상조사기획단을 통해 진실을 규명하겠습니다. 유족들의 오랜 기다림에 응답하겠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어떤 이는 눈을 감았고, 어떤 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래된 슬픔은 말이 없었지만, 모두의 눈빛 속에 남아 있었다.
여순사건 특별법이 제정된 건 2021년이었다. 하지만 진실을 향한 길은 아직 멀다. 조사관들의 걸음은 더디고, 기록은 흩어졌다. 어떤 유족은 담담하게 말했다.
“이제라도 밝혀진다면, 그걸로 됐어요. 우리도 지쳤으니까.”
그 짧은 말이 모든 것을 대신했다.
그날의 행사장은 마치 하나의 기도 같았다. 정부 관계자, 시민단체, 그리고 평범한 시민들까지 모두 함께 고개를 숙였다. 한쪽에서는 한 여성이 조용히 편지를 읽었다.
“아버지, 이제는 정말 세상이 알아줄까요? 아직도 당신의 이름을 부를 때면 목이 메어요.”
그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퍼져나가자, 바람마저 잠시 멈춘 듯했다. 누군가 훌쩍였고, 누군가는 두 손을 꼭 잡았다.

끝나지 않은 진실, 그리고 기다림
해가 지리산 능선 뒤로 천천히 기울었다. 행사장엔 노을이 스며들고, 바람이 조금 차가워졌다. 사람들은 쉽게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추모비 앞에 놓인 국화가 바람에 흔들렸고, 촛불이 가느다랗게 떨렸다.
“그 순간, 모든 게 멈춘 것 같았다.”
옆에 있던 한 참가자가 그렇게 말했다.
여순10·19사건은 단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지금도 이어지는, 우리 사회의 미완의 질문이었다. 왜 그들은 희생되어야 했을까, 왜 이렇게 오래 걸려야 했을까. 그리고 지금, 그 답은 어디쯤 와 있을까.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추념을 계기로 다시 약속했다. “정부의 책임을 다하겠다.” 그 말은 선언이 아니라 다짐처럼 들렸다. 단 한 번이라도, 이 나라가 그들의 억울함을 대신 사과해주길 바라는 마음. 진실은 느리지만, 언젠가는 닿을 것이라는 믿음이 행사장을 감쌌다.
나는 그날의 공기를 아직 기억한다. 국화 향이 스며든 바람, 눈시울을 훔치던 손끝,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던 눈빛들. 그 안엔 슬픔과 용서, 그리고 끝나지 않은 기다림이 있었다.
결국, 이날의 의미는 단순했다. ‘기억하겠다.’
그 말 한마디가 모든 것을 대신했다. 여순10·19사건의 진실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지리산 아래에서 울려 퍼진 그날의 약속은 오래 남을 것이다.
그날의 침묵은, 오히려 더 큰 울림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진실을 향해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