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도로 위의 비극
지난해 8월 새벽, 충남 천안의 한 도로. 음주 상태의 운전자가 차량을 도로 한복판에 세워둔 채 잠들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출동한 경찰이 차량 문을 두드리자, 운전자는 갑자기 도주했다. 그 순간부터 비극은 시작됐다.
운전자는 도심 도로를 빠른 속도로 질주하다 쓰레기 수거차와 환경미화원 두 명을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60대 환경미화원 1명이 숨지고, 동료 1명이 다쳤다. 사고 차량 운전자는 김모씨(26)로,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취소 수준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는 사고 직후 현장을 벗어나려 했으나 경찰에 곧바로 체포됐다. 검찰은 그에게 도주치사와 위험운전치사 혐의를 적용했다. 이는 음주운전 상태에서 사람을 사망하게 한 뒤 정당한 구호조치를 하지 않고 도망친 경우로, 법정 최고형은 무기징역에 이를 수 있다.
이후
재판 과정에서 김씨 측은 “당시 술에 취해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했다”며 양형 감경을 호소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은 “음주 상태에서 도주한 채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점, 피해 유족의 상실감이 크다는 점”을 이유로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반성의 태도가 있으나 죄질이 매우 무겁다”며 같은 형량을 유지했다.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 2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원심의 판단이 정당하다고 보았다. 재판부는 “음주운전 근절과 사회적 경각심 제고를 위해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이로써 김씨에게 선고된 징역 12년형이 최종 확정됐다.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이 원심의 양형을 그대로 유지한 것은 음주운전 후 도주 행위를 중대한 사회적 범죄로 본다는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결과다. 대법원은 최근 유사 사건들에서도 피고인이 ‘음주 상태라 판단이 흐려졌다’고 주장하더라도, 도주나 사망사고로 이어졌다면 중형을 선고하는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실제 법원행정처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음주운전 치사 사건은 연평균 170건가량 발생했다. 이 중 도주치사로 기소된 사건의 평균 형량은 8~10년 수준이지만, 인명 피해가 중대하거나 재범일 경우 12년 이상의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사회적 경각심 확산
이번 판결 이후 천안시와 환경미화원 노조는 “현장 근무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며 음주운전 방지 캠페인과 도로 안전시설 확충을 요구했다. 천안시는 새벽 근무 구간에 ‘스마트 조명 시스템’을 시범 도입하고, 쓰레기 수거차량에 야간 시인성 장비를 추가 설치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을 “법원이 사회적 메시지를 분명히 한 사건”으로 평가했다. 한국교통연구원 관계자는 “음주운전은 고의성이 낮다는 이유로 그동안 상대적으로 가볍게 처벌받아 왔지만, 이번 판결은 도주 행위와 결합된 경우 명백한 중범죄로 본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음주운전 단속 건수는 약 14만 건으로, 전년 대비 6% 감소했으나 여전히 하루 평균 400건 이상의 음주운전이 발생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대법원의 판결이 경각심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야간 단속을 강화하고, 음주운전 재범자에 대한 관리 체계를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남은 것은 한 생명의 무게였다. 새벽 도로 위에서 일하던 한 사람의 죽음이 남긴 교훈은 분명했다.
“술잔 뒤엔 언제나 누군가의 삶이 있다.”
그게 이번 판결이 던진 현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