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오후, 정적 속의 이경규
햇빛이 강하게 내려앉던 6월 8일 오후 2시, 강남 논현동의 도로엔 묘한 정적이 흘렀다. 차들은 평소보다 천천히 움직였고, 공기는 유난히 뜨거웠다. 그날, 개그맨 이경규(65) 씨는 처방받은 약을 복용한 채 운전대를 잡았다.
누군가는 그냥 평범한 오후였을지 모르지만, 그 몇 분의 시간이 이후 몇 달간 회자될 일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는 이경규 씨를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벌금 200만 원에 약식기소했다. 약식기소란 말 그대로, 재판정에 서지 않고 서면으로만 판단을 내리는 절차다. ‘가벼운 사건’이라 불리지만,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무게가 달린 순간이기도 하다.
그날, 강남의 공기는 묘하게 무거웠다. 그가 웃음을 터뜨리던 방송 속 모습은 잠시 잊혔다. 사람들은 스마트폰 알림을 통해 그 이름을 다시 마주했다.
“이경규가? 정말?”
“설마 약물이라니, 믿기 힘든데.”
길거리 카페, 택시 안, 회사 복도. 누구도 직접 본 건 아니지만, 모두가 그 이야기를 했다.
그가 복용한 약물은 ‘처방약’으로 알려졌지만, 정확히 어떤 약인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잠시 후, 한 지인이 조용히 말했다.
“건강 문제로 약을 먹었을 수도 있죠. 하지만 운전대는 또 다른 이야기예요.”
그 말이 낯설게 귓가에 맴돌았다.
이상하게 평범했던 오후, 웃음의 얼굴로 알려진 사람이 만든 정적은 묵직했다.
법과 사람 사이에 남은 거리
검찰은 해당 사건을 ‘경미한 혐의’로 판단해 약식기소를 택했다. 정식 재판이 아닌 서면 심리, 그리고 벌금 200만 원.
이 정도면 ‘사회적으로 큰 일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중의 시선은 다르다.
한 시민은 SNS에 이렇게 적었다.
“법은 가벼워도, 그 이름이 가진 책임은 무겁다.”
이경규 씨는 수십 년 동안 ‘예능의 대부’로 불리며 사람들에게 웃음을 줘왔다.
그가 등장하는 프로그램은 언제나 시청률의 중심이었고, ‘진심 어린 분노’나 ‘날카로운 유머’는 늘 화제가 됐다.
그런 그가 ‘약물 복용 후 운전’이라는 단어와 함께 언급되자,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했다.
“그냥 약을 먹고 운전한 건데, 그렇게까지?”
“그래도 운전은 생명과 직결된 거잖아.”
서로 다른 반응들이 이어졌다.
검찰은 “약물의 종류나 복용량 등을 고려했을 때 중대한 영향은 아니었다”고 밝혔지만, 세상은 여전히 그 사이에서 머뭇거렸다.
법은 죄를 판단하지만, 사람들은 마음으로 기억한다.
그날 이후, 사람들의 입에서 또 다른 질문이 흘러나왔다.
“유명인의 실수는 언제나 더 무겁게 다뤄져야 할까?”
혹은,
“그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바라볼 수는 없는 걸까?”
법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늘 좁혀지지 않는다.
그 틈 사이엔 공기처럼 보이지 않는 ‘기대’와 ‘실망’이 함께 흐르고 있었다.

웃음 뒤 씁쓸한 여운과 다시 시작
결국 이번 사건은 정식 공판 없이, 서류 한 장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세상은 단순히 ‘종결’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가 만들어온 수많은 웃음 뒤에는, 여전히 사람들의 기억과 평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를 두고 “누구보다 솔직한 방송인”이라 말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솔직함이 때로는 불편할 때도 있었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그 모든 논란과 찬반 속에서도, 이경규라는 이름은 여전히 한국 예능의 상징처럼 존재한다.
이번 일로 그의 커리어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사건은, 오랜 세월 대중 앞에 서온 한 인간의 ‘쉼표’로 남을 것이다.
그가 다시 마이크 앞에 설 때, 사람들은 또 묻겠지.
“그때 일, 이제는 괜찮습니까?”
그리고 그는 아마 특유의 웃음으로 대답할지도 모른다.
“다 지나간 일입니다. 다시 웃어야죠.”
그러나 그 웃음 뒤에는,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있을 것이다.
삶이란 결국, 실수와 회복의 연속이니까.
나는 그날 강남의 오후를 떠올린다.
햇빛에 잠시 눈을 찡그리던 행인들, 정지된 신호 앞의 차들, 그리고 조용히 멈춰 선 시간.
모든 건 다시 흘러가겠지만, 그 정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날의 침묵은, 오히려 더 큰 울림이 되었다.
그리고 그 울림은, 지금도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