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가운 복도에 스민 숨결
이른 아침, 수원지방법원 복도는 유난히 조용했다.
누군가의 신발이 바닥을 스치는 소리만 또렷하게 들렸다.
그날, 이명현 순직해병 특별검사팀이 청구한 김장환 극동방송 이사장에 대한 공판 전 증인신문이 최종 승인됐다.
11월 3일 오전 10시, 법정이 직접 그를 신문하기로 한 것이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 소리가 연달아 터졌다.
사람들은 이 사건이 ‘그저 절차적인 일’로 끝나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었다.
한 검사 관계자는 짧게 말했다.
“이번엔 다릅니다. 누군가 꼭 말해야 할 차례예요.”
법정 문 앞 공기는 묘하게 무거웠다.
낮은 조명 아래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긴장과 묘한 기대가 섞여 있었다.
그날의 공기엔, ‘이제는 말해야 한다’는 조용한 결심이 스며 있었다.
사람들은 숨을 죽였고, 기자는 펜을 쥐었다.
누군가의 이름이 불릴 순간을, 모두가 기다렸다.
거부로 쌓인 시간의 무게
김장환 목사는 그동안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로비 의혹 조사에 여러 차례 불응해왔다.
그의 이름은 호출될 때마다 사라졌고, 출석요구서만 남았다.
결국 특검은 공판 전 증인신문을 청구했다.
이제는 법이 직접 묻고, 법정이 직접 듣는 절차다.
특검 관계자는 담담하게 말했다.
“진실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조금 늦었을 뿐이에요.”
해병대 채상병 순직 사건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퍼즐처럼 남아 있다.
그날 이후 군과 사회, 언론과 시민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균열이 생겼다.
누군가는 말했다. “윗선의 입김이 있었다.”
또 다른 이는 반박했다. “모두 절차대로였다.”
하지만 채상병의 죽음 앞에서, 변명은 오래 머물 수 없다.
특검팀은 그가 진실의 일부를 쥐고 있다고 본다.
그가 입을 열면, 사건의 흐름이 완전히 바뀔 수도 있다.
법정 안, 기자 한 명이 조용히 메모를 남겼다.
“그가 말할까. 아니면 다시 침묵할까.”
그 질문은 오래도록 법정 안에 남았다.
그리고 모두가 느꼈다.
이건 단순한 신문이 아니라, 오래 미뤄온 대면이라는 걸.
끝나지 않은 질문, 진실의 자리
결국 이 모든 일의 시작은 한 젊은 해병의 죽음이었다.
그의 이름은 기록에 남았고, 그의 죽음은 질문이 되었다.
“왜, 그리고 누구의 명령이었나.”
이명현 특별검사팀의 행보는 어쩌면 당연한 과정이다.
그러나 그 길 위엔 여전히 수많은 침묵이 놓여 있다.
증언을 거부한 이들, 말을 돌린 이들, 그리고 외면한 이들까지.
그 사이에서 진실은,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움직이고 있다.
나는 그날 법정 밖을 떠올린다.
차가운 바람이 스쳐갔고, 낙엽이 천천히 떨어졌다.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걸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묘한 피로와 기대가 함께 묻어 있었다.
결국 진실은 말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용기와 시간, 그리고 기억으로만 드러난다.
이명현 특검팀의 발걸음이 무거운 이유다.
그날 법정의 공기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그날의 침묵은, 어쩌면 진실이 오기 전의 숨 고르기였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