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떠나는 자리의 공기
이별은 늘 같은 공기를 남긴다.
말없이 서 있는 두 사람 사이,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 속엔
하지 못한 말들이 떠다닌다.
누군가는 고개를 숙이고,
누군가는 억지로 웃는다.
하지만 둘 다 알고 있다.
이 순간 이후로 모든 게 달라질 거라는 걸.
이별은 그렇게 시작된다.
큰 소리도, 특별한 신호도 없다.
그저 눈빛이 달라지고,
손끝의 온도가 조금씩 식는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하루였지만
이상하게 모든 게 조금씩 멀어진다.
나는 그날의 공기를 아직도 기억한다.
햇살이 너무 맑았고,
바람은 지나치게 부드러웠다.
그 평온함이 오히려 잔인했다.
마치 세상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우리의 마지막을 무심히 비추고 있었다.
사람은 떠날 때보다
남을 때 더 힘들다.
가는 사람은 걸음을 옮기지만,
남은 사람은 그 자리에 머문다.
그 공기 속에서,
그 냄새 속에서,
모든 걸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이후로
그 자리를 몇 번이고 찾아갔다.
누군가 서 있던 자리,
그가 웃던 공간,
그곳의 공기는 아직도 그대로였다.
다만 그 안에 있는 내가 달라졌을 뿐이다.
그때는 그가 있었고,
이젠 나만 남아 있다.
시간이 흘러도
이별의 공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잊으려 해도,
그날의 온도와 빛깔이 문득 떠오른다.
그건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내 안에 남은 공기 같다.
그 공기를 마실 때마다
그 사람의 이름이 가슴속에서 천천히 피어난다.
사라지지 않는 그림자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아직 마음 어딘가에 그 사람이 남아 있는 것 같아
잊은 줄 알았는데,
가끔은 아무 이유 없이 생각나
걷던 길에 바람이 스치면
그때의 냄새가 따라오고
익숙한 음악이 들리면
그 사람의 목소리가 겹쳐져
이별은 없어지는 게 아니더라
그냥 조금씩 모양이 달라질 뿐이야
처음엔 아프게 남고
그다음엔 조용히 스며들고
어느새 마음의 일부가 돼 있더라
사람이 떠나면
그 빈자리를 기억이 대신 채우고
기억이 희미해질 즈음엔
감정이 남아
그게 마음의 그늘이 되고
때로는 하루의 공기가 되더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그림자는 결국 빛이 있었다는 증거잖아
그 사람이 내 삶에 빛이었으니까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건 당연한 일이지
이제는 그리움이 와도
굳이 밀어내지 않아
그냥 그대로 두고
그 안에서 잠깐 머물다 나와
조용히 걸어보면
그리움이 길이 되고
그 길 끝에서
조금은 부드러운 마음이 남아
그게 내가 그 사람을 보내고도
여전히 살아가는 방식 같아
완전히 잊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겠어
남은 마음으로 산다
가끔은 아무렇지 않은 척 웃다가도
순간, 숨이 턱 막힐 때가 있다
별일 아닌데도
그 사람이 생각나
잊었다고 말한 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시간 지나면 괜찮아진다는데
나는 아직 그 시간 속을 걷는 중이다
천천히, 아주 느리게
이별이란 게 그런 건가 싶다
눈물은 말라버렸는데
가슴 어딘가엔 아직 물결이 남아 있는
보이지 않는 파도 같은 거
문득 그런 날이 있다
손에 잡히지 않는 공기 속에서
그 사람의 말투가 스친다
그 웃음, 그 짧은 숨,
그게 아직도 내 하루 어딘가에 묻어 있다
억지로 잊지 않기로 했다
잊는 게 아니라 그냥… 두기로
생각이 나면 그대로 두고
그리우면 잠시 앉아서 숨을 고른다
그게 요즘 내가 사는 방식이다
사람은 결국
마음에 남은 온기로 버티는 존재 아닐까
누구를 사랑했다는 건
한때 뜨거웠다는 뜻이고
이제 남은 그 따뜻함으로
겨울을 견디는 일
어느 날은 그리움이 눈부시게 느껴진다
그 사람의 이름이
빛처럼 번져서 마음을 덮는다
그럼 또 조용히 웃는다
아, 그래도 좋았던 날이 있었구나
그게 나를 살게 하는 힘 같아서
지금도 가끔, 그 사람이 보인다
꿈에서도, 사람들 사이에서도
하지만 예전처럼 아프진 않다
이제는 그 얼굴이 하나의 계절처럼 느껴진다
한 번 지나갔지만, 여전히 마음속에서 햇살처럼 남아 있는
이별은 그렇게 완전히 끝나지 않는다
사람이 사라져도
그 마음은 어딘가에 남는다
아주 작은 숨결로,
때로는 눈빛으로
나도 모르게 살아서 움직인다
나는 그걸 믿는다
남은 마음으로도
충분히 사람은 살아갈 수 있다는 걸
그리고 그 마음이 아직 따뜻하다면
이별도 나쁘지 않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