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공기 속 약속의 말
짙은 새벽 공기 속,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마당에는 잔잔한 긴장감이 흘렀다. 제80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 서늘한 바람이 제복 깃을 스치고, 하늘은 아직 푸른빛을 머금은 채였다. 행사장 한편, 태극기가 바람에 흔들릴 때 이재명 대통령이 단상에 올랐다. 그는 잠시 마이크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경찰은 국민의 신뢰 위에 서야 합니다.”
그 한마디에 현장은 고요해졌다. 앞줄의 간부들은 손끝을 모으며 듣고, 뒤편 젊은 경찰들은 눈빛을 고정했다. 그들의 눈에는 다짐과 불안이 함께 비쳤다. 대통령은 이어 “과거 일부 경찰 지휘부가 최고 권력자의 편에 서서 친위 쿠데타에 가담했던 부끄러운 역사가 있다”고 말했다. 순간, 찬 공기 속에 무거운 공명이 번졌다.
그는 이어 “이제 경찰은 국민의 편에 서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민주 경찰의 시작이다”라고 강조했다. 그 목소리엔 꾸짖음이 아닌, 간절한 요청이 담겨 있었다.
행사장 바닥에는 제복의 구두가 줄 맞춰 반짝였고, 그 사이사이엔 묵묵한 숨결이 섞여 있었다. 누구도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그날의 아침, 경찰 제복은 단순한 권위의 상징이 아니었다. 그것은 국민의 신뢰를 지켜야 하는 약속의 무게였다.
사람들은 조용히 숨을 고르며 그날의 말을 마음속에 새겼다.
그리고 다들 알았다. 그 말이 단순한 의식용 문구가 아니라, 지금 경찰에게 주어진 가장 큰 숙제라는 것을.
권력과 국민 사이, 그날의 질문
시간이 조금 흘렀다. 대통령은 수사·기소 분리 이후 커진 경찰의 권한 문제를 꺼냈다. “이제 경찰은 막강한 권한을 가진 기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국민은 그 권한이 두렵다고 말합니다.”
그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몇몇 경찰 간부들은 입술을 다물었고, 한 젊은 경찰은 고개를 숙였다.
“국민의 우려에 진심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조용했다. 그 침묵이 더 강하게 다가왔다.
그는 이어 “경찰의 공권력은 국민의 신뢰에서 출발합니다. 신뢰받지 못하는 공권력은 존재 의미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순간, 행사장의 공기가 묘하게 무거워졌다.
한 경찰 간부는 나직이 속삭였다.
“그 말이, 결국 우리 자신을 향한 경고겠죠.”
그날 이후 사람들은 그 연설을 두고 오래 이야기했다.
“대통령이 경찰에게 신뢰를 요구했다지만, 국민의 신뢰는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과거의 그림자를 완전히 지울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이 인터넷 커뮤니티와 내부 게시판에 오르내렸다.
현장에 있던 한 경찰은 나중에 이렇게 회상했다.
“그 순간, 모든 게 멈춘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조직을 위해 일했지만, 그게 정말 국민을 위한 것이었는지 되묻게 되었죠.”
그의 말은 곧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기념식의 현장에는 상징적인 장면이 있었다. 국기 아래, 한 노년의 경찰 퇴직자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 손에는 낡은 경찰 배지가 쥐어져 있었다.
그는 속삭이듯 말했다. “신뢰는 한순간에 무너지고, 평생 걸려야 쌓인다.”
그 말이 곧 경찰 전체의 숙제처럼 들렸다.
그날의 질문은 여전히 이어진다.
경찰은 국민의 두려움을 신뢰로 바꿀 수 있을까?
그 길 위에서 ‘민주 경찰’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남겨진 신뢰와 변화의 시간
결국 대통령은 연설의 끝에서 이렇게 말했다.
“경찰은 제복 입은 시민입니다. 민주적 가치를 수호하며 국민의 삶을 지키는 것이 존재 이유입니다.”
그 말에 잔잔한 박수가 이어졌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무거웠다. 누군가는 고개를 숙였고, 누군가는 하늘을 바라봤다.
그날 이후 경찰청 내부에서는 변화의 조짐이 있었다. 몇몇 부서는 ‘국민 신뢰 TF’를 꾸려 시민과의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지역 경찰서에서는 주민 간담회가 다시 열렸고, 온라인 신고 시스템의 개선 논의도 시작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는 많았다. 현장에서는 “우리가 진짜 변하고 있는 걸까?”라는 회의도 흘러나왔다.
그러나 희미한 변화는 분명히 있었다. 순찰차 안에서 커피를 들고 휴식을 취하던 한 젊은 경찰이 동료에게 말했다.
“요즘 사람들 시선이 달라진 것 같아. 그래도 아직 멀었지.”
그 말에 동료는 미소로 답했다. “그래도 시작했잖아.”
결국 신뢰는 거창한 제도보다, 작은 행동에서 시작된다.
불친절한 말 한마디 대신 고개를 숙이는 태도, 권위보다 공감을 선택하는 자세.
그것이 대통령이 말한 ‘민주 경찰’의 첫걸음일 것이다.
나는 그날의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대통령의 말이 바람처럼 흩어지던 그 순간, 수많은 눈빛이 하나의 방향을 향해 있었다.
그건 권력이 아닌, 국민이었다.
아직 완전한 답은 없다. 그러나 신뢰를 향한 여정은 시작되었다.
그날의 침묵은, 오히려 더 큰 울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