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의 불길, 5호선 객차를 덮친 공포
그날 새벽, 지하철역 플랫폼에는 타는 냄새가 맴돌았다.
서울 지하철 5호선 한 객차 안에서 갑작스레 불꽃이 치솟았고, 사람들의 비명과 연기가 뒤섞였다. 누군가는 문 쪽으로 달려가고, 누군가는 아이를 끌어안은 채 엎드렸다. 차가운 선로 위로, 뜨거운 불길이 번져갔다.
5월 31일, 서울을 오가는 487명의 승객이 그 열차에 타고 있었다.
그중 한 60대 남성은 이혼소송 결과에 대한 분노를 품고 있었다. 재판에서 졌다는 사실이 그의 마음을 집어삼켰고, 그 분노는 결국 가방 속 휘발유와 라이터로 바뀌었다.
불길은 빠르게 번졌지만, 다행히 기관사의 침착한 대응으로 열차는 곧 정차했다. 일부 승객이 연기에 질식해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치명적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 순간의 혼란은, 그러나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에 남았다.
“잠깐의 불빛이었는데, 세상이 멈춘 줄 알았다.”
한 목격자의 떨리는 목소리는 그날의 공포를 그대로 전했다.
공기 속엔 아직 타버린 냄새가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조용히 숨을 고르며, 그날의 새벽을 잊지 못했다.
법정에 선 60대 남성, “이혼 때문이었다”는 말의 무게
그로부터 몇 달 후, 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합의15부 법정 안은 고요했다. 피고석에 앉은 남성은 초췌했다.
검찰은 “승객 160명을 살해하려 한 고의가 명백하다”며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남성은 고개를 숙인 채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게, 너무 억울했습니다. 가족도, 재산도 다 잃은 기분이었어요.”
재판부는 냉정하게 판결문을 낭독했다.
“피고인은 개인적 불만을 이유로 불특정 다수의 생명을 위협했습니다. 이는 사회 전체를 향한 범죄입니다.”
판사는 그의 사정을 고려하면서도 단호했다.
결국 법원은 살인미수, 현존전차방화치상, 철도안전법 위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형량은 징역 12년. 여기에 보호관찰 3년이 추가됐다.
그날 방청석에서는 묘한 침묵이 흘렀다.
“12년이 충분한가?”
누군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공공의 안전을 향한 경고, 그리고 남겨진 질문
결국 법정은 한 개인의 분노가 어디까지 사회를 흔들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지하철은 매일 수백만 명이 이용하는 공공 공간이다. 그곳에서의 방화는 단순한 폭력이나 분노의 표출이 아니라, 사회의 안전망 자체를 무너뜨리는 행위였다.
재판부는 판결문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다.
“공공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그 문장은 단순한 법적 선언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경고였다.
그러나 동시에 질문이 남는다.
왜 그는 이혼의 결과를 감당하지 못했을까.
왜 분노는 타인을 향해 불붙었을까.
그의 불길은 꺼졌지만, 사회 곳곳엔 여전히 외로움과 분노가 쌓여 있다.
나는 그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한 가지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세상은 너무 좁고, 또 너무 차갑다.
누군가가 불을 붙이기 전, 우리는 그 마음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지하철의 그 불빛은 꺼졌지만, 그날의 그림자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묻는다.
“분노를 막는 법, 정말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