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항의가 시작된 날
초가을의 바람이 천천히 교정 사이를 스쳤다. 오후 수업이 막 끝난 전북의 한 고등학교, 교사 B씨는 운동장 쪽에서 스며드는 전자담배 냄새를 맡았다.
바람에 섞인 달콤한 향은 낯설 만큼 뚜렷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발걸음을 돌려 냄새의 근원을 찾았다. 교복 차림의 두 학생이 벤치에 앉아 웃고 있었다.
“얘들아, 이건 학교 안에서 하면 안 돼.” 짧고 부드럽게 말했지만, 학생들의 표정은 굳었다. B씨는 즉시 보호자에게 사실을 알렸다. 그 순간까지만 해도 평범한 하루였다.
하지만 그날 저녁, 휴대전화가 울렸다.
“내가 허락했는데 왜 문제 삼아요?”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그 뒤로도 전화는 계속됐다. 새벽에도, 수업 중에도, 교무실에서도. “누가 우리 애를 모욕했대요?”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요?” 거친 말들이 이어졌다.
학교의 공기는 싸늘해졌다.
B씨의 책상 위엔 메모와 민원 서류가 쌓여갔고, 어느 순간 그는 말을 줄였다.
“요즘은 그냥 눈을 감고 있대.” 동료 교사는 그렇게 회상했다.
결국 그는 병원으로 향했고, 진단명은 ‘급성 스트레스 장애’.
그날 이후, B씨는 종종 숨을 고르듯 눈을 감았다. 그때마다 교무실의 공기가 묘하게 무거워졌다.
누군가는 속삭였다. “선생님이 아이를 지킨 건데, 왜 이렇게 됐을까.”
그 말은 공기 속에 흩어졌고,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전북 교권 침해가 드러난 순간
“아이의 흡연을 막은 게 죄가 되었어요.”
전교조 전북지부의 한 관계자가 내뱉은 말은 차갑게 들렸다. 이 사건은 단순한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교권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 됐다.
B씨는 규정을 따랐고, 학생의 건강을 위해 행동했다. 그러나 일부 학부모들은 그 원칙을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감히 내 자식을 그런 식으로 대했냐”며 교무실 앞까지 찾아왔다. 교사들은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요즘은 선생님들이 학생 건드리면 끝장이에요.” 그 말은 협박이자 경고였다.
그날 이후 교무실은 조용했다. 종이 넘기는 소리만 남았다.
며칠 뒤, 학교는 긴급 회의를 열었다. 주제는 ‘학부모 민원 대응 방안’.
하지만 문제는 단순한 행정이 아니었다.
학생을 지도하는 일과 학부모의 만족 사이의 균형은 이미 무너져 있었다.
교육청은 “사실관계를 조사 중”이라고만 말했다. 그러나 교사들은 이미 지쳐 있었다.
“이게 정말 우리가 원하던 교육인가요?”
한 교사의 물음이 공기처럼 내려앉았다.
누군가는 한숨을 쉬었고, 누군가는 고개를 숙였다.
전북 지역의 교권 침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에도 유사한 사례가 여러 건 있었다. 그러나 교사 보호 제도는 여전히 미비하다.
“그냥 버티는 게 일상이 됐어요.” 한 교사는 그렇게 말했다.
그들의 목소리는 절망과 피로 사이를 오갔다.
이제 교사들은 수업보다 민원 전화를 더 두려워한다.
잘못한 학생을 훈계하는 일보다, 그 사실이 학부모에게 전달되는 순간이 더 무섭다.
공포는 그렇게 뿌리내렸다.
이 모든 노력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남겨진 상처와 조용한 울림
결국 이번 사건은 한 교사의 고통을 넘어, 교육 현장의 신뢰 붕괴라는 더 큰 그림을 드러냈다.
전북교사노동조합은 “정당한 생활지도가 악성 민원에 의해 무력화되고 있다”며,
교육청에 ‘교사 보호 전담 대응팀’ 신설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더디기만 하다.
B씨의 동료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요즘은 그냥 모른 척하게 돼요. 괜히 또 일이 커질까 봐.”
그 한마디엔 체념이 묻어 있었다.
그러나 교실은 여전히 아이들이 모이는 곳이다.
누군가는 그 안에서 질서를 세우고, 잘못된 길을 막아야 한다.
그 역할을 지켜줄 울타리가 없다면, 교육은 공허해진다.
교권은 교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약속의 울타리다.
나는 그 교사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억울함보다 깊은 피로가 담겨 있었다.
그는 말했다. “그냥 조용히 있고 싶어요.”
그 말 속엔 포기가 아니라, 살아남으려는 절박함이 있었다.
결국, 우리는 질문 앞에 서 있다.
교사를 보호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아이들은 누구에게 배울 수 있을까?
그날의 침묵은, 오히려 더 큰 울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