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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의 횡령 유죄 확정과 경영권의 안도

by jeongwonn1 2025. 10. 17.

오래 걸린 하루의 끝에서

짙은 회색 정장이 법정 조명 아래에서 묘하게 번들거렸다.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은 말없이 법정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서초동 대법원 청사 복도에는 묘한 정적이 흘렀다.
플래시가 터질 때마다 차가운 공기가 흔들렸고, 기자들의 펜 끝이 잔잔히 떨렸다.

그는 이미 여러 차례 이 길을 걸었다.
2018년 1월, 처음 기소됐을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아무도 몰랐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횡령과 배임’—그 단어들이 7년 9개월이라는 시간을 잡아두었다.

그 긴 시간 동안 효성은 흔들렸고, 사람들의 시선은 냉정해졌다.
주주총회 때마다 ‘법의 판단이 언제 나오느냐’는 질문이 반복됐다.
그때마다 회사는 “사법 절차를 지켜보겠다”고만 답했다.

그날의 공기는 달랐다.
재판부가 판결문을 읽기 시작하자, 모든 숨이 멎은 듯했다.
“피고인 조현준, 횡령 혐의는 유죄. 배임 혐의는 무죄.”
단 한 문장으로 7년의 무게가 내려앉았다.

조 회장은 잠시 고개를 떨궜다가 다시 들었다.
짧은 침묵 끝에 그는 말했다.
“이제 회사와 직원들에게 집중하겠습니다.”
그 말 한마디에 남아 있던 공기가 천천히 풀렸다.
사람들은 조용히 숨을 고르며 그날의 의미를 되새겼다.


긴 시간의 그림자, 그리고 판결의 무게

이번 사건의 핵심은 ‘회사 자금 16억 원’이었다.
검찰은 조 회장이 효성 계열사의 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업무상 필요에 따른 자금 집행”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횡령 혐의만은 명확히 유죄로 판단했다.

판결문은 차가웠지만 명료했다.
“피고인은 회사 자금을 개인적 용도로 사용함으로써, 회사의 재산상 손해를 야기하였다.”
그 한 줄이 모든 논란을 정리했다.

배임은 무죄였다.
법원은 “경영 판단의 영역에서 나온 결정으로, 불법의 고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결국 대법원은 ‘경영의 자유’와 ‘도덕적 책임’ 사이의 경계를 다시 그은 셈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배임이 무죄라는 건 경영 판단의 재량을 인정한 겁니다.
하지만 횡령은 다른 문제입니다. 자금의 주인은 회사고, 그 돈의 방향은 투명해야 합니다.”

그 말은 냉정하지만 현실이었다.
효성 내부에서도 이 사건은 오랫동안 그림자처럼 남아 있었다.
임직원들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혹시 또…”라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
경영의 흐름은 느려졌고, 신뢰 회복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판결이 확정된 날 효성 주가는 오히려 4.69% 상승했다.
‘불확실성의 종결’이 시장에 안도감을 줬기 때문이다.
한 증권 애널리스트는 말했다.
“시장에선 오히려 기다려온 결론이었습니다.
이제 리스크가 사라졌다고 보는 거죠.”

그 뒤로 효성 본사 주변엔 오랜만에 활기가 돌았다.
직원들은 복도에서 작게 웃었고, 로비 모니터엔 ‘정상 경영 복귀’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오랜 고비를 넘긴 듯했다.

하지만 사람들 마음 한켠엔 질문이 남았다.
“과연 이 시간 동안 잃어버린 신뢰는 어디로 갔을까?”


판결 이후의 길, 그리고 남은 질문

판결이 확정됐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난 건 아니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대법원의 결정은 한 기업의 법적 불확실성을 해소했지만,
그 이면에는 ‘리더십의 윤리’라는 무거운 과제가 남았다.

한국 재벌의 역사는 언제나 ‘성장’과 ‘통제’의 줄다리기였다.
조현준 회장의 사건 역시 그 연장선 위에 있다.
기업의 수장은 회사의 이익을 위해 결정을 내린다고 말하지만,
그 결정이 개인적 판단과 섞이는 순간, 법은 냉정해진다.

효성 내부 한 관계자는 말했다.
“회장님이 다시 경영에 전념할 수 있게 돼 다행입니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도 배워야 할 게 많아요.
투명한 시스템이 없었다면 이런 일은 또 반복될 수 있으니까요.”

이 사건은 한 개인의 실수로만 끝날 수 없다.
한국의 기업문화가 여전히 ‘사람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조직보다 개인, 시스템보다 권위.
그 구조 속에서 회삿돈은 때로 개인의 손을 거쳐 흐른다.
그 순간 법은 묻는다.
“그건 정말 회사의 이익이었는가?”

나는 법원 앞에서 이 말을 떠올렸다.
진실은 언제나 문장보다 느리게 온다.
판결문이 읽히는 몇 분 동안,
7년의 시간이 다시 흘러가는 듯했다.
그리고 그 끝에서, 한 기업의 얼굴이 바뀌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남은 건 ‘사람’이었다.
직원들의 피로, 투자자들의 불신, 그리고 국민의 시선.
이 모든 건 아직 회복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결국 이번 판결은 ‘끝’이 아니라 ‘출발선’이다.
기업의 윤리, 리더의 책임, 그리고 시장의 신뢰를 다시 세워야 하는 시간.
그 길은 여전히 멀고, 조용하지만 분명히 이어지고 있다.

나는 그날의 오후를 잊을 수 없다.
판결이 끝나고 청사 앞을 걸어 나오던 사람들의 표정,
그 안엔 해방과 허무, 그리고 작은 희망이 함께 있었다.
바람은 차가웠지만, 공기는 한결 맑았다.

그날의 침묵은, 오히려 더 큰 울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