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의 긴장, 특검이 던진 영장
짙은 새벽빛이 서울중앙지검 건물을 감쌌다. 공기는 싸늘했고, 사람들의 표정엔 긴장과 기대가 동시에 섞여 있었다. 순직한 채상병 사망 사건을 수사 중인 특검팀이 전직 군 고위 관계자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날이었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박진희 전 군사보좌관, 유재은 전 법무관리관, 김동혁 전 검찰단장 — 무게감 있는 이름들이었다.
특검팀이 출범한 지 110일째, 긴 침묵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기자들의 플래시가 번쩍일 때마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누군가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라도 밝혀져야죠. 너무 오래 걸렸어요.”
현장은 고요했지만, 공기 속엔 묘한 떨림이 있었다. 검찰청 앞에 서 있던 시민들은 서로의 표정을 읽었다. 분노, 슬픔, 그리고 미묘한 기대. 모두의 마음속엔 같은 질문이 있었다.
“오늘, 정의가 조금이라도 움직일까?”
특검팀의 발표는 짧았다.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했습니다.” 그 말은 담담했지만, 그 속엔 오래된 분노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사람들은 그 문장 하나에 온종일 시선을 빼앗겼다.
그날 새벽, 바람은 차가웠고 하늘은 유난히 맑았다. 그리고 그 공기 속엔 오래전 멈춘 진실이 천천히 깨어나는 듯한 기척이 있었다.
공범 논란 속 전직 장관의 이름
이날 청구된 영장에는 한 줄의 문장이 있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공범으로 언급된다.”
그러나 그는 구속영장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 문장이 공개된 순간, 정치권과 국민은 동시에 술렁였다. 여당은 “근거 없는 정치적 공격”이라며 반발했고, 야당은 “늦은 정의라도 의미가 있다”고 맞섰다.
하지만 국민들은 다르게 반응했다. 누군가는 물었다.
“왜 그는 빠졌을까?”
특검 관계자는 회의실에서 짧게 말했다.
“증거가 가리키는 방향이 그렇습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 말은 정직했지만, 너무 차가웠다.
사건의 기록을 들춰보면, 채상병이 사망한 직후 보고 체계가 뒤틀리고, ‘사고’라는 단어가 ‘훈련 중 사망’으로 바뀐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내부 문건 일부엔 상급자의 수정 지시 흔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수정 뒤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권력의 그림자가 있었다.
그날 이후 군 내부에서는 묵직한 말이 돌았다.
“명령은 위에서 내려왔습니다. 우리는 따랐을 뿐입니다.”
특검이 이 문장을 쫓기 시작한 순간, 사건은 단순한 군 비리에서 ‘권력의 책임’으로 바뀌었다.
이종섭 전 장관의 이름이 청구서에 적힌 이유는, 바로 그 명령의 시작점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실은 아직 조각나 있다. 누가 거짓을 썼고, 누가 침묵을 택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그 침묵의 대가를, 한 병사가 대신 치렀다.
남겨진 질문, 정의는 어디에
결국 이번 영장청구는 단순한 법적 절차가 아니었다. 그것은 ‘국가의 책임’을 다시 묻는 일이었다. 한 젊은 해병의 죽음 뒤에 감춰진 명령과 외압, 그리고 그 침묵의 사슬이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 세상이 주목하고 있다.
영장 심사 결과는 이르면 23일 밤에 나온다. 그러나 사람들의 시선은 이미 법정을 넘어 있다. SNS에는 분노와 피로, 그리고 체념이 뒤섞여 있었다.
유가족은 기자회견에서 울먹이며 말했다.
“우리 아들의 이름이 정치의 말 속에서 사라지지 않길 바랍니다.”
그 말은 오래 남았다. 진실은 종종 증거보다 느리고, 정의는 종종 권력보다 약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촛불을 든 시민들이 다시 거리로 나왔고, 누군가는 뉴스 댓글에 한 줄을 남겼다.
“정의는 아직 살아 있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한.”
그날 이후, 세상은 잠시 조용했지만, 그 조용함 속엔 분명한 울림이 있었다.
그 울림은 질문이었다.
“진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그 새벽의 공기를 기억한다. 싸늘하고 무거웠지만, 이상하게도 희망이 섞여 있었다.
그 희망은 거창한 정의가 아니라, 단 한 사람의 용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결국, 진실은 느리지만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언젠가, 그날의 침묵은 누군가의 증언으로 깨어날 것이다.
그 순간,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정의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