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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가리 막걸리 누명, 16년의 침묵이 깨어졌다

by jeongwonn1 2025. 10. 29.

전남 순천의 시골 마을. 그곳은 바람이 잦아들면 들리는 닭 울음소리조차 어딘가 슬펐다. 2009년 가을, 막걸리 잔 위로 퍼진 청산가리 냄새는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고, 다른 두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 당시 언론은 사건의 자극적인 제목으로 연일 떠들었고, 75세의 어머니 A씨와 41세의 딸은 하루아침에 살인자라 불렸다. “그들이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마을 사람들의 입에서는 수군거림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목소리는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A씨는 수사실에서 매일 밤 울음을 삼켰다. “나는 하지 않았어요.” 그 말은 벽에 부딪혔다. 형사들은 의자에 앉혀놓고, 몇 시간씩 반복된 질문을 쏟아냈다. “딸을 살리고 싶지 않아?” 그 한마디에 그녀는 무너졌다. 결국 ‘내가 했다’는 말을 입 밖에 내는 순간, 진실은 뒤집혔다. 딸 역시 조사실에서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을 인정했다. "엄마가 먼저 자백했다"는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자백은 ‘증거’가 되었고, ‘증거’는 곧 ‘형벌’이 되었다. 그렇게 그들의 삶은 감옥에 갇혔다. 마을의 공기마저 그들을 배척했다. 사람들은 문을 닫았고, 친구들은 연락을 끊었다. 그날 이후, 그 모녀의 이름은 금기어가 되었다.

 

억울한 고백이 만든 상처

그로부터 수년이 흘렀다. A씨는 수감 중에도 매일 같은 꿈을 꿨다. “누가 나 좀 믿어줬으면 좋겠다.” 꿈속에서도 그 말만 되뇌었다. 2014년 항소심, 2016년 대법원, 모든 재판은 ‘기각’이라는 냉정한 두 글자로 끝났다. 딸은 젊은 나이에 중년의 얼굴이 되었고, 어머니의 손은 병으로 굳어갔다.
그러던 2023년 봄, 재심 전문 변호사 한 명이 사건 기록을 우연히 접했다. 그는 말했다. “이 자백, 너무 완벽합니다. 인간의 언어가 아니에요.” 그 한마디가 시작이었다. 먼지가 쌓인 기록 더미 속에서 이상한 점들이 하나씩 드러났다. 피고인들이 체포된 뒤 조사 과정은 녹음되지 않았고, 자백 외에 명확한 물증은 존재하지 않았다. 독극물의 출처도, 동기도 불분명했다. 변호사는 수사기록을 다시 제출하며 외쳤다. “이건 조작된 자백입니다. 강압의 흔적이 곳곳에 있습니다.”
그날 법정 안의 공기는 묘하게 떨렸다. “피고인 A씨와 그 딸에게 무죄를 선고합니다.” 판사의 목소리가 울릴 때, 방청석은 숨을 삼켰다. A씨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딸은 울지 않았다. 대신 눈을 감았다. 너무 오랜 시간 기다린 말이었다. 16년의 억울함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변호사는 조용히 말했다. “이제야 진실이 제자리를 찾았네요.” 법정 안의 모든 이들이 잠시 말을 잃었다. 모두가 멈췄다.

 

법정에서 되살아난 진실의 온기

그날 법정 밖으로 나온 모녀의 발걸음은 느렸다. 기자들이 플래시를 터뜨렸지만, 그들의 얼굴은 담담했다. 딸은 말했다. “우리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면 좋겠어요.” 그러나 그 말 속에는 지울 수 없는 슬픔이 묻어 있었다. 16년 동안 세상은 변했고, 그들의 시간은 멈춰 있었다.
마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환영은 없었다. 오히려 낯선 침묵이 감돌았다. “진짜 무죄라네요.” “그래도 뭔가 사정이 있었겠지.” 누군가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진실이 밝혀져도 사람들의 시선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어머니는 병든 손으로 막걸리 잔을 잡았다. “이젠 냄새만 맡아도 속이 울렁거려요.” 그 한마디에 세월의 무게가 실렸다.
시간은 흘렀지만 상처는 남았다. 공소시효가 끝나 검찰과 경찰의 책임은 묻히게 되었다. 강압 수사로 만들어진 거짓이 한 가정을 무너뜨렸지만,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누가 우리의 세월을 돌려줄까요?” 딸의 질문은 허공에 흩어졌다. 기자들의 펜 끝은 멈추지 않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남겨진 질문, 누가 그들의 세월을 돌려줄까

결국, 진실은 돌아왔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어머니의 머리칼은 희고, 딸의 청춘은 이미 흩어졌다. 그들은 다시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세상은 그들을 여전히 ‘청산가리 모녀’로 기억했다. 무죄라는 판결문 한 장이 명예를 회복시켰지만, 잃어버린 시간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침묵은 누군가에게 용기가 되었다. 억울한 이들의 편에 서려는 젊은 변호사들이 생겨났다. 재심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그들도 끝내 무죄를 받았잖아요.” 그렇게 작은 희망이 피어났다.
아직 완전한 끝은 아니다. 그날의 상처는 사회의 어두운 기록으로 남아 있다. 누명을 벗은 두 사람의 이야기는 ‘사람이 만든 거짓’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이 만든 정의’가 얼마나 늦게라도 올 수 있는지를 증명했다.
법정에서 마지막으로 고개를 숙이던 그들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따뜻함과 슬픔이 뒤섞인 그 순간, 모두가 조용히 숨을 멈췄다. 진실은 언제나 느리게 온다. 그리고 그 느림은, 때로 인간의 존엄을 증명하는 가장 아픈 속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