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오는 마음의 결
요즘 들어 이상하게 마음이 잔잔하지가 않다
바람이 불면 금세 흔들리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도 마음이 출렁인다
그냥 흘려보내면 될 일인데
어쩐지 파도가 치듯 가슴 안쪽이 요동친다
하루를 버티는 건 예전보다 익숙해졌는데
이상하게도 고요한 순간이 더 힘들다
밖은 아무 일도 없는데
내 안에서 작은 물결이 일어난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얼굴,
이미 지난 시간의 기억들이
불쑥불쑥 밀려온다
창문을 살짝 열어봤다
바람이 들어오는데 차갑지 않았다
그 안에 묘하게 익숙한 냄새가 있었다
비 온 뒤의 거리 냄새 같기도 하고,
누군가 곁에 있을 때의 온기 같기도 했다
그 공기 속에 잠시 멈춰 서 있었다
숨을 고르고, 다시 한 번 천천히 들이마셨다
파도라는 건 결국 마음의 모양인 것 같다
아무 일도 없는 날에도
어디선가부터 서서히 다가오고
생각보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부딪혀 온다
도망쳐도 결국 다시 찾아온다
그리고 한참 머물다
조용히 물러가 버린다
그 사람의 이름이 아직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다
잊으려 애썼지만
기억이란 건 이상할 만큼 끈질기다
그때의 웃음, 말투, 손끝의 온기
그게 아직 바닥 어딘가에 고여 있었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완전히 마르지 않는 감정 같은 것
가끔은 그게 싫지 않았다
이제는 아프다기보다
그냥 나라는 사람의 일부가 된 느낌
그리움이 남는다는 건
한때 진심이었다는 증거니까
그 마음을 억지로 버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창밖으로 하늘이 조금씩 흐려졌다
빛이 구름 뒤로 숨어들고
차가운 공기가 방 안까지 번져 들어왔다
나는 창가에 앉아서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라디오에선 오래된 노래가 흘러나오고
그 멜로디가 바다 소리처럼 느껴졌다
그때 깨달았다
사람의 마음은 파도처럼 완전히 잠들지 않는다는 걸
가라앉았다가도, 다시 일어나는 것
그게 마음의 습성 같았다
완전히 고요할 순 없고
누군가를 기억하면 또 흔들린다
그 흔들림이 나쁜 건 아니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내가 아직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줬으니까
나는 이제 그 물결을 피하지 않는다
밀려오는 감정을 그냥 바라본다
부서져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그 안에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다시 돌아온다
그게 내 마음의 호흡이 된 것 같다
밤이 깊어갈수록 파도는 더 잔잔해졌다
몸 안 어딘가에서 조용히 일렁이는 그 물결이
이제는 무섭지 않았다
그저 마음이 살아 있다는 신호 같아서
나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 같은 숨소리 속에서
오늘의 마음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부서지며 남은 것들
파도가 한 번 크게 밀려왔다
예고도 없이, 그냥 갑자기
평온했던 하루가 금세 흔들렸다
마음 안쪽에서 오래 눌러뒀던 기억들이
순식간에 쏟아져 나왔다
나는 그대로 멈춰 섰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무엇을 붙잡아야 할지도 몰랐다
사람이 이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파도라는 게 그런 거다
멀리서 볼 땐 잔잔한데
가까이 다가오면 무섭도록 세다
붙잡을 틈도 없이 덮쳐와서
모든 걸 한 번에 쓸어버리고
그 뒤에 고요함만 남긴다
그 사람의 이름이 머릿속을 스쳤다
예전처럼 설레지도, 울리지도 않았는데
그냥, 그 이름 하나로 가슴이 흔들렸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잠깐 겹쳐진 느낌이었다
잊으려던 시간들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그 사람과 웃던 거리,
비 오는 날 같이 뛰던 골목,
작은 말 한마디에 웃었던 밤
그게 한순간에 떠올라서
가슴이 뻐근해졌다
나는 괜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다
그 밑으로 바람이 지나가며
내 머리카락을 흩뜨렸다
그때 생각이 났다
이렇게 흔들리던 마음도
언젠간 잦아든다는 걸
파도가 부서진 자리엔
작은 조각들이 남는다
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조각들
그게 꼭 마음의 파편 같았다
아팠던 순간들이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따뜻함이 있었다
나는 그 파편들을 버리지 않았다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햇살에 비춰봤다
생각보다 아름다웠다
부서졌지만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으니까
그 안엔 여전히 내 온기가 남아 있었다
사람이 산다는 건
아마 그런 거 아닐까
파도가 치고, 부서지고,
그 조각들을 다시 모아 나를 만드는 일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조금 깨져 있어도 나쁘지 않다는 걸
이제야 알 것 같다
저녁이 되자 바람이 잦아들었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조금 달라 보였다
지쳐 있긴 했지만,
예전보다 조금 부드러워진 표정이었다
그걸 보고 문득 웃음이 났다
부서져서 남은 건 상처가 아니라
조금은 단단해진 마음이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오늘의 파도는 그렇게
조용히 나를 지나갔다
다시 밀려오는 빛
오늘 아침은 이상하게 조용했다
바람도 잠잠했고, 공기도 부드러웠다
창문을 조금 열었는데
차가운 공기 사이로 따뜻한 냄새가 스며들었다
햇살이 커튼 사이로 흘러들어오면서
방 안이 천천히 밝아졌다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동안 버티느라 너무 굳어 있었던 몸이
살짝 풀리는 느낌이었다
가슴 한가운데서부터
잔잔한 물결이 도는 듯했다
파도는 언제나 다시 온다
한 번 부서졌다고 끝나는 게 아니구나
조용히 밀려왔다가,
잠시 머물다,
다시 나를 감싼다
예전처럼 아프게 부딪히지 않고
그냥 부드럽게 스며드는 식으로
커피를 내리며 라디오를 켰다
낯선 노래가 흘러나오는데
가사보다 멜로디가 먼저 마음에 닿았다
창가에 앉아 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김이 천천히 올라가고
햇빛이 잔 위에 반사되었다
그 빛이 너무 예뻐서
괜히 오래 바라봤다
예전에는 이런 순간을 그냥 지나쳤다
뭔가 늘 쫓기듯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르다
사소한 것들이 자꾸 마음에 남는다
이 작은 평온이 고맙다
아무 일도 없는데
그게 참 좋다
문득 그 사람이 생각났다
이상하게도 이제는 아프지 않았다
그 이름을 떠올리면
그저 마음 한켠이 살짝 따뜻해진다
그때의 나,
그때의 웃음,
그 모든 게 덧없지 않다는 걸
이제는 안다
사람 마음은 바다 같아서
아무리 깊어도 끝은 결국 고요로 돌아간다
한때 부서졌던 감정이
이렇게 다시 잔잔해질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그게 파도의 마음이자
사람의 마음인 것 같다
나는 오늘도 파도를 본다
멀리서부터 밀려오는 물결
그 안에 빛이 스며들고
바람이 살짝 흔들린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니
묘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언젠가 또 파도가 밀려오겠지
그때도 나는 도망치지 않을 것 같다
그 물결 속에서 내가 살아 있음을
조용히 느낄 테니까
햇살이 점점 밝아졌다
잔잔한 커피 향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제야 알았다
아, 나도 조금은 괜찮아졌구나
오늘은 그냥 이대로 좋아도 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