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끝에서 마주한 법정 — 감정의 무게
서울 서초동 법원 앞, 바람이 묘하게 싸늘했다. 사람들은 휴대폰을 손에 쥔 채 실시간으로 뉴스를 확인하고 있었다. “최태원 회장, 노소영 관장 이혼소송 파기환송.” 화면에 뜬 문장은 짧았지만, 그 안에 담긴 세월은 길고 복잡했다.
1988년 결혼으로 시작된 두 사람의 관계는, 권력과 재벌가의 화려한 무대에서 이어져 왔다. 그러나 그 무대 뒤엔 오래된 균열이 있었다. 2015년 최 회장이 혼외자 존재를 인정하면서, 결혼생활은 사실상 끝이 났다. 그리고 8년 넘게 이어진 이혼 소송이, 이제 대법원의 손에서 다시 고등법원으로 돌아갔다.
그날, 법원 앞에선 카메라 셔터음이 쉴 새 없이 터졌다.
누군가는 말했다. “사랑이 끝난 자리엔 늘 계산이 남지요.”
그 말엔 냉소와 씁쓸함이 섞여 있었다.
한때는 국가권력과 재벌가를 잇는 ‘명문가의 결합’으로 상징되던 두 사람의 이름이, 이제는 ‘1조 3,808억 원’이라는 숫자로 대변되고 있었다. 공기엔 묘한 긴장과 피로가 감돌았다. 사람들은 조용히 화면을 끄며, 이 긴 싸움의 끝이 과연 어디일지를 생각했다.

법의 언어로 재단된 삶 — 파기환송의 의미와 흔들린 시장
대법원 2부는 서울고등법원의 2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결정했다.
즉,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전 부인 노소영 관장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1조 3,808억 원’의 재산분할은 다시 계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신 위자료 20억 원 지급 결정은 그대로 확정됐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뇌물성 비자금’이었다. 대법원은 “해당 비자금은 부부 공동재산 형성에 기여했다고 볼 수 없다”며, 이를 포함한 2심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결국, 재산분할 총액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SK 주가는 그 즉시 반응했다. 발표 직후 SK 주식은 전 거래일보다 6% 이상 급락했다.
시장 관계자는 “총수 일가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투자심리가 위축된 것”이라 말했다.
“법정 싸움이 길어질수록 기업 이미지에도 타격이 가죠. 특히 이번 건은 금액이 워낙 크니까요.”
이혼소송이 단순한 ‘가정사’를 넘어 ‘시장 변수’가 된 셈이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재벌가의 이름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공공의 관심사로 이어진다.
“이 모든 계산은 결국, 누가 진정으로 손해를 본 걸까?”
사람들은 그렇게 속삭였다. 돈이 줄어든 건 법정 계산의 문제지만, 잃은 신뢰와 상처는 누구도 환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쪽에선 노소영 관장이 여전히 “가정의 회복을 원했다”는 말을 남긴 인터뷰가 회자됐다.
다른 한쪽에선 최 회장이 이미 새로운 삶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반복적으로 보도됐다.
그 사이에서 사람들은 묘한 감정을 느꼈다. 누군가는 동정했고, 누군가는 냉정했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질문을 품었다.
“결국 사랑도, 권력도, 돈도… 법 앞에서는 얼마나 유효할까?”
결론 없는 결론 — 관계의 온도와 사회의 시선
결국 이번 판결은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이었다.
서울고법은 다시 계산기를 꺼내 들겠지만, 법이 모든 걸 정리해줄 순 없다.
이 사건은 한 부부의 파탄을 넘어, 한국 사회가 ‘사적 영역과 공적 영향력’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거울이 됐다.
그러나 법의 판단이 아무리 정교해도, 감정의 무게는 법조문 안에 담기지 않는다.
‘1조 3,808억 원’이라는 숫자 뒤에는 수십 년의 시간, 세 사람의 관계, 그리고 한 시대의 권력 구조가 녹아 있다.
결국, 그 모든 것이 ‘금액’으로 환산되는 순간 인간적인 허무가 스며든다.
나는 이 장면을 오래 바라보았다.
대법원 판결문이 읽히는 그 순간, 법정 안의 공기가 잠시 멈춘 듯했다.
차가운 문장들 사이에서 들리지 않는 한숨이 흘렀다.
사람들은 그날 법원을 떠나며 말했다.
“진실은 판결로 끝나지 않는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결국, 법은 사건을 닫을 수 있을지 몰라도, 마음의 문은 그렇게 쉽게 닫히지 않는다.
그날의 침묵은, 오히려 더 큰 울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