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거버넌스가 만든 조용한 긴장
늦가을의 서울, 을지로 본사 회의실 안은 묘하게 고요했다. 창밖으로는 바람이 서늘하게 스며들고, 회의실 안 조명은 따뜻했지만 공기는 묵직했다. 그 자리엔 SK텔레콤 차호범 CPO와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의 팀 엥겔하르트 인권담당관이 마주 앉아 있었다. 이날의 만남은 단순한 기업 일정이 아니었다. ‘AI 거버넌스’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국제 인권 논의의 테이블 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은 지난 2024년 수립한 ‘T.H.E. AI’ 원칙을 소개하며 자사의 인공지능 철학을 밝혔다. 투명성(Transparency), 인간 중심(Human-centric), 윤리(Ethics). 세 단어는 AI가 인간 사회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해야 하는지를 담은 약속이었다. 차호범 CPO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AI는 이제 단순한 기술이 아닙니다. 인간의 판단을 대신하는 존재가 되었죠. 그만큼 책임도 깊어집니다.”
엥겔하르트 담당관은 잠시 말을 멈추고 눈을 들었다. 회의실 안의 공기가 순간 멈춘 듯했다. AI가 사회 곳곳으로 스며드는 시대, 기술의 윤리와 인간의 권리 사이엔 여전히 보이지 않는 간극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간극을 좁히려는 첫걸음이 지금 이 자리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기자단 중 한 명이 속삭였다. “이건 기술의 회의가 아니라, 인간의 회의 같네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의 분위기엔 묘한 떨림이 있었다.

유엔 인권논의 속에서 빛난 SK텔레콤의 책임
이번 만남은 SK텔레콤이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에 자사의 AI 거버넌스 체계를 공식적으로 소개한 첫 사례였다. 단순한 제안이나 설명이 아니라, ‘AI 시대의 인권 보호’라는 세계적 화두에 대한 직접적인 응답이었다. SK텔레콤은 ‘T.H.E. AI’를 중심으로, AI가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지 않도록 설계된 윤리적 구조를 강조했다.
“우리는 기술의 진보보다 중요한 것이 인간의 권리라고 믿습니다.”
차호범 CPO의 발언에 회의실 안 공기가 다시 팽팽해졌다. 엥겔하르트 담당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AI는 인류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거대한 힘입니다. 그러나 그 힘은 항상 인권의 언어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그 순간, 참석자들의 시선이 교차했다. 회의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도심의 불빛이 서서히 번져나갔다. 기술과 인간, 효율과 존엄, 혁신과 책임—이 모든 단어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회의가 끝난 후 복도에서 들려온 작은 대화 한 줄이 오래 남았다. “AI가 인간을 대신하는 세상에서, 인간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그 질문은 답이 없었지만, 모두의 가슴속에 깊게 박혔다.
책임 있는 AI, 그 약속이 남긴 여운
그날의 만남은 선언이 아니었다. 오히려 약속에 가까웠다. SK텔레콤과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앞으로 ‘책임 있는 AI’ 구현을 위한 공동 연구와 협력 체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단순히 원칙을 세우는 것을 넘어, 실제 정책과 산업 현장에서 적용 가능한 윤리 기준을 함께 마련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복잡하다. 인공지능의 결정이 사람의 삶을 바꾸는 시대,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기업일까, 개발자일까, 혹은 사회 전체일까. AI 거버넌스는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한 긴 여정의 시작이었다.
SK텔레콤은 앞으로도 글로벌 표준을 선도하며 AI 윤리 분야의 모범 사례를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진짜 변화는 선언이 아니라 실천에서 시작된다. 기술의 언어 속에 인간의 온도를 불어넣는 일, 그것이 진정한 ‘책임 있는 AI’의 출발점이다.
나는 그날의 회의 장면을 떠올렸다. 조용히 스치는 바람, 빛에 반사된 유리창,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진지한 눈빛.
결국, 기술의 발전이란 인간의 존엄을 다시 배우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날의 침묵은, 여전히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었다.
“AI의 윤리는, 결국 인간의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